"기름집 있으면 버틴다"…호르무즈 위기에 석화 생존력 '희비'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4.02 16:12  수정 2026.04.02 16:12

정유 계열사 보유 여부가 생존 경쟁력 좌우

가동 중단 확산 vs 내부 조달로 버티기

사업재편 속도마저 원료 확보 능력 따라 온도차 뚜렷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공급망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주요 산업단지의 공장 가동률이 급락하고 있다. 특히 정유 계열사를 통한 원료 수급 능력을 갖췄는지 여부에 따라 기업 간 대응 여력과 생존 경쟁력이 갈리는 모습이다. 나프타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4월 중순이 전면적인 생산 중단 여부를 결정짓는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동 전쟁 여파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대응 여력은 정유 계열사와의 수직계열화 여부에 따라 뚜렷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SK지오센트릭과 HD현대케미칼은 계열 정유사로부터 나프타를 내부 공급받거나 장기 계약 물량을 기반으로 감산 수준에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롯데케미칼과 LG화학, 여천NCC 등은 가동률을 최저 수준으로 낮추거나 일부 생산라인을 멈추는 등 대응 수단이 제한된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나프타 분해설비(NCC)에 집중된 단일 구조라는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NCC는 원료 유연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나프타 공급이 끊길 경우 대체가 쉽지 않다. 일부 글로벌 업체들이 에탄 기반 크래커 등 다양한 원료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물류 흐름을 고려할위기는 3월 말부터 본격화됐고 4월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서 출발한 나프타가 국내에 도착하기까지 평균 20~25일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달 중순 이후부터는 입고 물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확보된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일부 업체를 중심으로 전면 생산중단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차이는 사업재편 속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석유화학 업계에 구조조정을 압박하며 1분기 내 재편안 도출을 요구했지만 지역별로 대응 속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여수와 대산 등 원료 조달 부담이 큰 지역에서는 감산과 설비 조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울산은 아직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울산 석유화학 단지에 위치한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에쓰오일 등은 최종 사업재편안을 확정하지 못한 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정유 부문을 함께 보유한 울산 지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나프타 조달 여건이 양호해 상대적으로 재편 속도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정유 사업에서 발생한 이익이 화학 부문의 손실을 일부 상쇄하는 구조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여수 산단의 롯데케미칼과 여천NCC는 원료 수급 부담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설비 가동 중단과 사업재편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원료 확보 여건이 취약한 기업일수록 구조조정 압박도 함께 커지는 양상이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최근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주요 제품 스프레드는 공급 차질 우려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수요 회복이 아닌 공급 축소에 따른 가격 반등 성격이 강하다. 고가 원재료 확보 비용과 물류비, 보험료 상승 등이 동시에 반영되면서 실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부의 시장 개입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나프타 수출 제한과 수급 조정 정책이 병행될 경우 기업들은 원료 확보와 판매 전략 모두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격 통제와 공급 통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기업 대응 여력이 더욱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5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고 나프타 수급 조정에 나섰지만, 연간 수십조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는 업계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원가 상승분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일시적 악재를 넘어 국내 석화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리포트를 통해 "이번 사태를 단기적인 경기 변동 요인이 아닌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다"며 "원재료 조달 차질 영향이 큰 업체를 중심으로 신용도 반영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업체별 원료 조달 유연성과 가동률 조정 수준에 따라 영향은 차별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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