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80만 관중의 대기록을 작성한 프로야구 열기는 ‘구도’ 부산서 불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는 최근 4년 연속 관중동원 1위를 기록했다. 사직구장을 찾은 2만 273명의 경기당 관중은 지난 1995년 LG 이후 두 번째로 경기당 2만 관중 돌파이며 한 시즌 최다관중 기록이기도 하다.
매 경기 입장권이 동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사직구장이 관중들로 들끓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롯데만큼 ‘성적=관중’ 비례 원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구단이 없기 때문.
롯데는 지금까지 전설로 회자되는 ‘최동원 vs 선동열’의 맞대결이 벌어진 1987시즌,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경기당 1만 관중(1만 807명) 고지를 밟았다. 팀 성적 역시 3위로 인기와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부산의 야구 열기는 1992시즌 절정으로 치닫는다. 염종석이라는 걸출한 신인에 힘입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롯데는 그해 프로야구 전체(약 390만명)의 1/4이 넘는 120만9632명의 팬들이 사직구장을 메웠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롯데는 암흑기에 접어든다. 2001시즌 도중, 김명성 감독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게 된 백인천 감독은 팀의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김주찬의 홈런타자 변신 실패와 무리한 체중 감량으로 이대호의 무릎 부상을 야기한 점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결국 롯데는 2001년부터 4년 연속 최하위에 처졌고, 이 가운데 2002시즌은 자이언츠 30년 역사의 굴욕으로 남아있다. 당시 롯데는 승률이 고작 0.265에 머물며 한 시즌 최다패(97패) 기록을 갈아치웠다. 3할 타자는 단 1명도 없었고, 홈런 10위 안에 드는 선수도 없었다. 마운드에서도 10승 투수를 찾기 어려웠다.
관중들의 외면은 당연한 수순. 당시 사직구장은 경기당 1910명만이 입장했는데 이는 인천에서 수원으로 '야반도주'한 현대 유니콘스(1797명)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치였다.
무엇보다 그해에는 두 차례나 100명 이하의 관중이 입장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2년 10월 19일, 한화와의 홈경기에 집계된 관중은 고작 69명으로 15명만 덜 왔더라면 역대 한 경기 최소관중(1999년 쌍방울 54명) 기록을 경신할 뻔했다. 이보다 앞서 3일전 현대와의 경기서도 롯데는 96명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펼쳤다.
부산의 야구 열기는 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되살아났다. 로이스터 감독은 약점을 최소화하던 국내 감독들과 달리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선수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가을 야구 한 번 해보자”라던 롯데팬들의 바람은 7년 만에 이뤄졌고, 관중은 전 시즌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해 집계된 경기당 2만1901명의 관중은 프로야구 역대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이듬해에도 가을 야구를 펼친 롯데는 2년 연속 경기당 2만 관중을 돌파했고, 이전 시즌 기록했던 총 관중 기록도 138만 18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프로야구 통산 누적관중의 기록은 아쉽게도 롯데의 몫이 아니다. 롯데는 지난 30년간 총 2034만 4165명을 기록한 반면, 잠실을 홈으로 둔 LG의 2164만 8236명이 현재진행형인 최다 관중 기록이다.
LG는 최근 들어 잇따른 가을잔치 실패로 고전하고 있지만, 연고지가 서울이라는 특수성과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보유, 매년 안정적인 관중을 동원하고 있다. 실제로 LG는 MBC 청룡에서 팀명을 바꾼 지난 1991년 이후 경기당 1만 관중 이하로 집계된 시즌이 고작 4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롯데와 LG의 누적관중 격차는 약 130만명. 2~3년 내에 따라잡을 수 없는 만만치 않은 숫자다. 그러나 2만 여 관중이 주황색 봉지를 머리에 쓰고 일제히 ‘마!’라는 함성이 울리는 한 역대 최다관중의 대기록은 롯데가 다시 쓸 가능성이 크다. 물론 흥행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과거와 현재가 그랬듯 성적이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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