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한화의 에이스 류현진(25)의 올 시즌 키워드는 ‘불운’이다.
21경기에 선발 등판해 137.2이닝동안 평균자책점 3.20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도 그가 올린 승수는 고작 5승(8패)에 그친다. 류현진보다 20이닝이나 적게 던지고 평균자책점도 0.57이나 높은 삼성 장원삼이 벌써 14승인 것을 감안하면 불운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한화 타자들은 올 시즌 류현진이 등판하는 경기서 유독 방망이가 터지지 않고 있다. 류현진의 득점지원은 2.71점으로 선발 투수들 가운데 가장 낮고, 1득점 이하 지원 경기는 10경기에 달한다. 한대화 감독은 아예 “현진이가 나오는 날에는 더 불안하다”고 말할 정도다.
한화 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류현진이 한화를 상대했으면 승수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터지지 않는 방망이, 게다가 주루미스와 견제사, 실책 등 기본기마저 무너진 한화의 야수들은 에이스를 허탈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화 구단이 걱정해야할 부분은 따로 있다. 류현진이 올 시즌 후 해외 포스팅 시스템 입찰 이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한화가 류현진을 잡을 명분이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현진은 올해 7시즌 째를 맞고 있다. 자유계약선수(FA)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2014년까지 뛰어야 하지만 구단 동의 하에 올 시즌 종료 후 해외 구단 이적이 가능하다. 이미 류현진은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계약을 맺으며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앞서 류현진의 1년 선배 윤석민(26·KIA)은 지난해 포스팅 시스템 입찰 자격을 얻었지만 구단의 동의를 얻지 못해 잠정 보류한 바 있다. 당시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등 투수 4관왕에 오른 윤석민은 자신의 몸값을 한껏 올렸고,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보라스 사단의 일원이라 본인의 의지에 따라 해외 진출을 강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윤석민은 구단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지 못했다. 윤석민의 잔류는 ‘명투수 조련사’ 선동열 감독의 부임과 무관하지 않다. 현역 시절 전설의 대투수였던 선 감독은 지도자 길에 들어선 뒤 지금의 삼성 불펜왕국을 구축한 장본인. 따라서 윤석민 입장에서는 선 감독의 손길을 거쳐 잠재력을 한 번 더 끌어올릴 환경이 마련된 셈이었다.
또한 2009년 KIA의 우승 당시, 윤석민은 시즌 내내 잔부상에 시달리며 27경기 출전에 그친 바 있다. 팀 동료들이 우승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릴 때 윤석민의 연봉은 고작 4000만원 올랐다. 지난해 준PO에서도 1차전 완투승을 따냈지만 무리하게 4차전 선발을 고집하다 팀의 조기탈락을 막지 못했다. 윤석민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우승을 이끌겠다는 욕심이 있다.
반면, 류현진이 처한 현실은 윤석민과 180도 다르다. 데뷔 첫 해 팀 내 선배였던 구대성에게 지금의 주 무기인 써클 체인지업을 전수받은 뒤 곧바로 리그를 초토화시켰다. 이후 류현진은 이렇다 할 구질개발을 하지 않았다. 투 피치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빅리그 진출을 염두에 둔 올 시즌, 슬라이더와 커브 장착이 눈에 띄지만 그야말로 타자의 허를 찌르는 ‘뜬금 구질’에 머물고 있다.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팀 전력도 류현진의 해외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류현진은 데뷔 후 2년간 가을잔치를 경험한 뒤 5년째 푹 쉬고 있다. 올 시즌도 한화는 최하위가 유력하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순간이다. 현역 트로이카 중 SK 김광현은 벌써 3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윤석민도 한 차례 정상에 섰다. 류현진은 팀을 떠나지 않는 한 무관의 제왕에 그칠 공산이 크다.
현재 한화는 '통 큰' 결정을 내릴 구단주가 부재 중이다.
류현진을 붙잡을 팀 내 기반이 취약한 점도 한화 입장에서는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한대화 감독은 3년 계약이 올 시즌을 끝으로 종료돼 류현진의 잔류보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해야할 처지에 놓여있다.
또한 구단주인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의 구속도 악재라면 악재다. 김 회장은 지난해 잠실구장을 찾아 한화팬들 앞에서 “김태균 잡아올게”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약속은 프로스포츠 역대 최고 연봉(15억원)이라는 통 큰 계약으로 지켜졌다. 하지만 김 회장의 부재로 “류현진 잡아!”라는 지시는 불가능해졌다.
올해 들어 류현진의 경기를 보기 위해 해외 스카우트들의 눈이 부쩍 많아진 점도 한화의 속을 태우고 있다. 지난 23일 문학구장에는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컵스의 스카우트는 물론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관계자까지 등장해 이날 선발 등판한 류현진을 분석하기 바빴다.
이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꾸준함과 좋은 하드웨어, 그리고 삼진을 잡아낼 수 있는 결정구까지 류현진이 가진 매력은 해외 스카우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한화는 올 시즌 박찬호와 김태균, 송신영 등을 영입, 전력을 힘껏 끌어올리고도 또 다시 꼴찌로 추락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한 리빌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류현진을 놓친다면? 한화의 리빌딩은 가장 어려운 숙제라는 에이스 발굴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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