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마스크팩과 함께 ‘수출 왕좌’ 등극
북미 노후 전력망 교체·AI 데이터센터 폭증에 특수
HD현대·효성, 현지생산 승부수로 中 물량공세 격파
김영기(왼쪽 네번째부터 )HD현대일렉트릭 사장과 이준호 애틀랜타 총영사, 조석 HD현대 부회장 등이 지난 6일(현지 시간) 미국 앨라배마에서 진행된 북미 생산법인의 제2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한국산 변압기가 북미 전력 인프라 교체 수요와 글로벌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 1위에 등극했다. 과거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던 전력기기가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메모리 반도체, 마스크팩과 함께 대한민국 수출을 견인하는 새로운 ‘골든 엔진’으로 부상한 것이다.
18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세계 수출 1위 품목은 총 81개로 5년 연속 세계 10위를 지켰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변압기의 약진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5년 만에 왕좌를 탈환한 메모리 반도체, K-뷰티 열풍의 주역인 마스크팩과 함께 전력기기가 수출 1위 품목에 새로 이름을 올리며 제조업의 체질 개선을 증명했다.
변압기가 세계 왕좌를 차지한 배경에는 북미발(發) 슈퍼 사이클이 있다. 현재 미국 내 전력망의 70% 이상은 설치된 지 25년을 넘어선 노후 상태다. 여기에 생성형 AI 확산으로 ‘전기 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가 폭증하면서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초고압 변압기 수요가 폭발했다.
국내 초고압 변압기 양강인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선제적인 미국 현지 투자로 시장을 장악했다. 중국이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고장이 나면 대정전으로 이어지는 전력망 특성상 미국 고객들은 기술 신뢰도가 높은 한국산을 선택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미국 멤피스 초고압변압기 공장 전경.ⓒ효성중공업
특히 전력 산업의 관전 포인트가 ‘대규모 전력의 효율적 송전’으로 이동하면서 765킬로볼트(kV)급 초고압 송전망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장거리 대용량 송전에 필수적인 765kV 변압기는 대당 가격이 70억~140억원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현재 북미 내 신규 송전망 잠재 수요만 수조원 규모로 추정되지만 이를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 두 회사를 포함해 전 세계 5개 업체 내외에 불과할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
이러한 특수성에 발맞춰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미국 앨라배마주 생산법인에 약 2억 달러(약 3000억원)을 투입해 제2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이 생산 법인은 2011년 국내 전력 기기 업계 최초로 설립한 미국 현지 변압기 생산 공장이다. 내년 4월 준공 시 초고압 변압기 생산 능력이 50% 확대되고, 특히 765kV급 라인 강화를 통해 북미 시장 리더십을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이를 통해 연간 약 2000억원의 추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역시 조현준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북미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효성중공업은 2010년대 초부터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765kV 초고압 변압기의 절반 가까이를 공급하는 등 현지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2020년 인수한 미국 멤피스 공장을 중심으로 3단계 증설을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미국 송전망 운영사와 787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국내 기업이 미국에서 따낸 단일 프로젝트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나민식 SK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전력기기 업체가 경쟁력을 보여주는 배경은 크게 보면 내재 역량 축적과 원가 경쟁력, 현지 생산 능력”이라며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 각각 미국 현지 제조 공장에서 생산이 가능한데, 운송이 어려운 765kV 변압기 특징상 현지에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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