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은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 요미우리와 계약금 1억 5000만엔 연봉 1,200만엔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단했다.
새 밀레니엄이 열리던 2000년 12월 5일, 전국 청춘남녀의 부러움을 받던 한 커플이 탄생했다. 바로 조성민-최진실 커플이다.
13년이 지난 지금 두 스타 모두 우리 곁에 없다. 화려했던 명성도, 부러움도 없다. 2008년 최진실이 먼저 세상을 떴고 새해 6일에는 조성민마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13년 전 둘은 장밋빛 희망과 부러움으로 충만했던 ‘세기의 커플’이었기에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일본프로야구의 최고인기 구단 '교진' 요미우리 투수 조성민과 국내 최고 인기를 자랑하던 배우 최진실의 결혼은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조성민-최진실 커플은 조 디마지오와 마를린 먼로 커플의 한국판으로 불리며 세인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메이저리그의 당대 최고 스타인 조 디마지오와 은막의 스타 먼로가 만든 세기의 로맨스만큼 화려했다.
하지만 결혼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98년 일본 올스타전에 등판 팔꿈치 부상 후 재활에 전념해야 할 상황에서의 결혼이었기에 서서히 우려의 시선으로 변해갔다.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조성민과 최진실 커플은 4년 만에 이혼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10개월 만에 파경을 맞은 디마지오-먼로 커플과 같은 길을 걸어갔다.
야구선수로 조성민은 비운의 천재로 불러야 할 정도로 재능이 아까웠던 재목이다. 야구계에서는 최고의 황금세대로 불리던 92학번의 선두주자 중 하나다. 임선동-조성민-손경수로 불리던 초고교 삼총사 중 하나였다.
박찬호도 고교시절엔 조성민에 가렸던 존재다. 여기에 정민철, 염종석 그리고 차명주, 전병호 등 내로라하던 초호화 마운드, 투타에 능했던 박재홍도 황금 92학번 출신이다.
고교시절 이미 당당한 체구에 150km/h에 육박하는 빠른공을 던지던 조성민은 한국야구를 이끌 에이스로 촉망받았다. 고려대로 진학한 조성민은 졸업 전 메이저리그와 국내, 일본의 세 갈래 길에서 일본을 택했다.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 요미우리와 계약금 1억 5000만엔 연봉 1,200만엔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단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박찬호가 진출해 있었기에 일본을 선택했던 것.
조성민의 진가는 이듬해인 1997년 마무리를 맡으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150km를 넘는 빠른 공은 묵직하고도 힘이 넘쳤다. 특히,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드는 패스트볼은 압권이었다. 여기에 주무기 슬라이더에 포크볼까지 구사, 조성민은 일약 요미우리의 미래로 급부상했다.
영정사진 속 환하게 웃는 故 조성민.
1998년엔 마무리가 아닌 선발로 등판, 전반기 7승의 파죽지세를 보이며 일본야구 열풍을 국내에 상륙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 선수로 출장한 조성민이 불의의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 아웃된다.
이후 조성민은 야구보다는 야구 외적인 일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최진실과의 만남과 결혼도 야구를 못하게 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요미우리의 차세대 에이스라는 찬사를 받던 조성민은 이후 야구선수로는 재기하지 못했다.
조성민은 하드웨어는 훌륭했지만 팔로만 던지는 투구폼을 지녀 부상의 우려를 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크볼을 주무기로 장착, 팔꿈치에 무리가 따랐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성민은 일본에서 야구를 그만둔 뒤 메이저리그를 선택하지 않았던 걸 후회한 적도 있다. 조성민의 투구 스타일은 메카닉이 아닌 힘으로 밀어붙이는 빅리그 스타일이다.
또 체계적인 선수 관리와 과학적 관리로 부상을 방지하는 예방 시스템이 더 발달한 메이저리그로 갔더라면 조성민의 선수생활은 좀 더 연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검은 베이브 루스'로 불리던 니그로리그의 전설적 강타자 조시 깁슨은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란 단지 아웃코스의 패스트볼과 같은 것(Death ain't nothing but a fastball on the outside corner)'이라고. 깁슨의 정의처럼 조성민의 죽음은 마치 자신의 주무기였던 바깥쪽 패스트볼만큼이나 빠르고 순간적인 느낌이다. 아쉽게도 그는 이미 우리 곁에 없다.
고교시절엔 무명의 박찬호보다 더 유명했던 유망주 조성민. 박찬호만큼 한국 야구의 전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조성민의 불운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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