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민주당 '생떼'에 마침표 찍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개인적으로 의혹 살 일 안해" 단언
검찰 수사와 관련 "앞으로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 위반 없도록"
박근혜 대통령이 31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태로 불거진 관권선거 파문과 관련, 모든 의혹을 명확히 밝히고 관련자를 엄벌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더불어 국정원 사태를 국회 정기회와 국정감사 쟁점으로 끌고 가는 정치권에 대해서도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인적으로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국가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의혹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민에게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수석비서관회의가 끝난 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7월 8일 수석비서관회의, 8월 27일 수석비서관회의, 지난달 16일 여야 대표와 3자회담에서 국정원 사태에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한결같은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날 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잇따른 의혹이 자신과는 무관함을 강조하며 “철저한 조사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불편부당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재발방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정부는 모든 선거에서 국가기관은 물론, 공무원 단체나 개별 공무원이 혹시라도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엄중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특히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이런 일련의 의혹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대한민국의 선거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기존 발언과 비교해 그 정도가 한층 진전됐다. 앞서 박 대통령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밝히고, 정쟁 종결을 촉구하는 선에서 발언을 마무리했으나, 이날 회의에선 민주주의 수호, 경제 활성화 등 구체적인 의제까지 언급하며 정치권의 협조를 구했다.
박 대통령은 또 “우리 국민들도 진실을 벗어난 정치 공세에는 현혹되지 않을 정도로 민도가 높다. 지금 우리 국민은 정치권이 정쟁을 멈추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서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는 그런 성숙한 법치국가의 모습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며 정치권의 자중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기존에도 ‘수사 중인 사안에 개입하지 않는다’, ‘정쟁은 여야가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해왔으나, 이를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긴 이번이 처음이다.
"법과 원칙에 대한 소신 그대로 묻어나"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민생이 정쟁의 뒷전으로 밀려선 안 된다는 우려와 함께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정치권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중이 단긴 것으로 풀이된다. 또 박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한 ‘비정상적인 관행의 정상화’ 차원에서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관권선거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다음달 2일부터 일주일 간 예정된 해외순방 일정을 고려하면, 아무런 수습 없이 해외로 떠날 경우 귀국한 뒤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8월부터 요구하던 4대 요구사항(국정원 개혁, 대통령 사과, 책임자 엄벌, 국정원장 해임) 중 두 가지를 수용했다. 박 대통령은 8월 26일 회의에서 “국정원 개혁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공언했으며, 이날 회의에선 두 차례에 걸쳐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남은 두 가지 요구사항의 경우 새 정부에선 국정원 사태의 책임이 없는 만큼, 수용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배경에는 지난 30일 서청원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의 화성갑 재선거 당선도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서 전 대표는 2위 오일용 민주당 후보에 33.5%p 앞선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결과적으론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재확인하는 효과를 거뒀다.
여기에서 얻은 자신감을 토대로 박 대통령이 국정원 정국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의도가 깔려 있었을 것이란 시각이다. 또 민주당이 재보선 패배로 충격에 빠진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이 민주당을 상대로 포용력과 리더십을 발휘할 적기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31일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야당이 요구하는 상당히 진전된 내용”이라며 “조금 더 제대로 된 형식으로 발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박 대통령은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얼어붙은 정국을 풀기 위해 나름대로의 성의를 보였다”고 평했다.
박 평론가는 이어 “국정원 사태는 공판이 진행되고 있으니 사법부에게 맡겨두고, 정치권은 국정감사를 잘 마무리하고 정기국회, 예산안 처리 등에 매진해달라는 게 박 대통령의 메시지”라면서 “이건 대통령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고, 예상할 수 있는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법과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 그대로 묻어났다”고 평했다.
다만 신 교수는 “국정원 사태가 마무될 줄 알았다. 국민도 상황이 끝나길 바라고, 대통령도 이 사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줄 알았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학습효과가 없다. 선거에서 국정원을 물고 늘어져 30%p 이상 차이로 졌으면, 국민이 국정원엔 이제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발표 시점과 형식이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박 평론가는 “시기적으로 일단 늦었다. 발표도 정홍원 국무총리와 같은 방식으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이 문제만큼은 대통령이 끊었으니 여야가 협의해 이제 정기국회, 다가오는 인사청문회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하고, 정국을 푸는 것이 정치력인데, 모든 것을 총리가 대신했다”고 꼬집었다.
박 평론가는 이어 “오히려 야당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소지가 있다. 이번 재보선도 졌는데, 민주당이 꼬리를 내릴 리 만무하다”며 “조금 더 일찍 타이밍을 잡고, 발표 형식도 좀 더 진지하게 제대로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