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타몰이 삼성' 유희관 아꼈다·아깝다·안타깝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입력 2013.11.03 08:14  수정 2013.11.03 08:19

궁지 몰린 삼성 류중일 감독 좌타몰이로 승부수

두산, 좌완 유희관 카드 5차전 꺼냈다면..

3차전 조기 강판으로 인해 유희관은 불펜에서 활용할 수 있었지만 두산 김진욱 감독은 7차전 선발을 택했다. ⓒ 연합뉴스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 들어가서라도 데려온다'는 야구 격언이 있다.

빠른 공을 던지는 특급 좌완의 희소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이 격언이 나올 당시보다 현대 야구에서 좌완의 희소가치는 더 치솟고 있다. 스위치히터의 급증, 그리고 우투 좌타 선호 현상 등으로 인한 '후천적 좌타자'들이 리틀리그부터 인위적으로 양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속 150km 이상 던지는 좌완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물다. '괴물' 류현진이 좌완이 아닌 우완이었다면 연봉과 몸값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특히,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 리그를 호령하는 좌완을 보유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은 전력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2014시즌 두산베어스가 바로 그랬다. 두산은 불펜에 좌완이 없는 치명적인 아킬레스를 안고도 넥센과 LG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미라클의 주인이 됐다. 두산이 보유한 좌완은 '느림의 미학' 유희관이 유일했다. 그 흔한 좌완 스페셜리스트 하나 없는 시리즈 승리, 그 자체로도 대단하다.


'두산 모이어' 유희관 활용법

유희관은 지옥에나 널려 있는 특급 좌완이다. 최고 구속 130km대의 느린공을 가졌기 때문에 시즌 전 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느린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Slow-Slower-Slowest Ball)의 레퍼토리로 리그를 제패한 제이미 모이어를 닮아 ‘두산 모이어’로 불린다. 유희관의 공은 모이어만큼 느리지만 멈추진 않는 마구다.

그런데 유희관은 준플레이오프(넥센)와 플레이오프(LG)보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 더욱 중요한 투수였다. 삼성 중심 라인업이 좌타 위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된 박한이를 비롯해 채태인-최형우-이승엽의 거포라인, 그리고 준족의 좌타 정형식까지 포진했다. 박석민을 제외하곤 중심 라인업에 우타를 찾기 힘든 게 삼성의 특징이다.

그래서 유희관의 활약은 시리즈 향방을 가를 변수였다. 대구 원정에서 2연승을 달린 두산 입장에선 유희관이 등판한 3차전만 이기면 거의 시리즈는 두산의 승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잘나가던 두산이 꼬인 건 코칭 스태프의 판단 실수로 유희관이 교체되면서부터.

이 경기에서 벤치의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두산은 장원삼이 호투한 삼성에 2-3 패배, 3연승에 실패했다. 4차전에서는 이재우가 역투한 두산이 2-1 승리, 시리즈 전적 3-1로 앞섰다. 단 1승만 거두면 대망의 한국시리즈를 가져오는 절호의 기회였다.


시리즈 변곡점 '5차전 8회'

낭떠러지에 몰린 삼성 류중일 감독은 5차전에서 강경수를 뒀다. 1번 정형식부터 5번 이승엽까지 줄줄이 좌타를 몰아넣은 것. 나머지 4명은 모두 우타자다. 작년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가동, 톡톡히 재미를 봤던 라인업이었다. 우완 선발이 내정된 경기에서 초반에 승부를 거는 'All Or Nothing' 전략이다.

초반 공략에 성공한다면 기선 제압, 초반 공략에 실패하면 상대 불펜 운용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모험수다. 삼성 류 감독은 SK와의 한국시리즈 5,6차전에서 연속 좌타 라인업을 가동, 윤희상과 마리오 산티아고를 초반에 무너뜨린 바 있다.

그 라인업을 궁지에 몰린 5차전에서 선택했다. 두산 선발 노경은을 초반부터 공략해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삼성은 예상대로 1회 채태인의 솔로포 포함, 대거 3득점 기선을 제압했다.

두산 타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최준석을 앞세운 두산이 응집력으로 맹추격, 5-5 동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두산은 5-5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던 8회초 1사 2,3루 위기에서 정재훈을 선택했다. 정재훈은 박한이에게 뼈아픈 2타점 적시타를 맞고 패했다. 5차전 이후 대구로 다시 내려가면 삼성 분위기. 두산이 모험수를 택했다면 어땠을까.

두산 입장에서는 좌완 불펜이 없었던 게 두고두고 뼈아플 대목이다. 아니 있었는데 활용하지 못한 게 오히려 천추의 한이다. 바로 왼손 에이스 유희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3차전 조기 강판으로 인해 유희관은 불펜에서 활용할 수 있었지만 두산 김진욱 감독은 7차전 선발을 택했다.


2년 연속된 류중일 묘수 '좌타몰이 라인업'

비슷한 경우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있었다. 바로 SK 좌완 김광현이다.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 선발로 나선 김광현은 조기강판으로 내려왔다. 이틀 뒤 열리는 한국시리즈에서 등판이 가능한 체력 상태였다.

조기강판한 김광현을 좌타 거포가 많은 삼성전에서 선발로 활용하느냐 아니면 변칙적으로 등판시키느냐 선택의 기로에 선 바 있다. 당시 SK 이만수 감독은 김광현을 4차전 선발로 택했다. 어차피 박희수와 정우람은 경기 막판에 나올 뿐, 중간은 좌완 공백이었다. 그 공백을 파고든 삼성은 1,2차전에서 내리 승을 따내며 시리즈 향방을 이미 결정지었다.

삼성은 작년과 올해 선발투수 둘을 묶어 등판시키는 '1+1' 전략을 썼다. 반면, SK와 두산은 정공법을 택했다. 삼성의 막강 좌타 라인을 봉쇄하기 위해서 정상적인 로테이션이 아니라 변칙이 가미된 좌완 불펜을 운용했다면 어땠을까.

삼성 류중일 감독은 우완이 선발 등판하고 좌완 불펜이 취약한 경기에서 2년 연속으로 좌타몰이 라인업을 택했다. 이런 라인업을 공략하는 방법은 우완과 좌완을 묶어서 1+1로 내는 방식이나 위장선발 형식도 좋은 방법이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SK 감독시절 자주 썼던 단기전 비법이다.

두산 김진욱 감독은 정공법을 택했다. 도박을 건 상대팀의 라인업을 상대로 정공법이 유효했는지는 의문이다. 삼성을 상대로 유희관의 활용도가 약간만 달랐더라도 시리즈 향배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삼성 입장에서는 2년 연속으로 좌타자 연결 포진의 승부수가 다시 성공했다. 류 감독은 좌타자 연결 라인업을 선호한다. 타 팀 입장에서는 여기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고 류 감독 입장에선 이 선택이 주효했다. 궁지에 몰리면 류 감독은 흔히 활용하는 지그재그 라인업이 아니라 좌타몰이 라인업을 택한다.

상대가 초반에 승부수를 띄우면 그 수를 역이용할 필요가 있다. 두산과 SK는 그것을 안했다. 좌타 왕국 삼성을 넘기 위해선 정공법이 아닌 변칙적인 좌완의 운용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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