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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어서 가” 맏언니 조해리, 아름다운 희생


입력 2014.02.16 15:11 수정 2014.02.16 16:19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여자 1500m 준결승에서 후배 김아랑 엄호

실격 처리됐지만, 맏언니다운 희생정신 빛나

조해리의 아름다운 희생이 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 연합뉴스

중공군이 몰려오자, 장동건이 동생 원빈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외친 뒤 개틀링 기관총을 부여잡는다.

적진을 향해 총알을 퍼붓지만, 이내 형(장동건)은 장렬히 전사한다(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중 한 장면).

쇼트트랙 여자 1500m 경기에서도 이 같은 장면이 나왔다. 대표팀 맏언니 조해리(28·고양시청)는 15일(한국시각) 러시아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궁전서 열린 2014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1500m 준결승에서 김아랑(18·전주제일고)의 결승 진출을 도왔다.

당초 조해리는 3000m 계주에만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1500m에 나설 팀 동료 박승희(22·화성시청)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신 출전했다. 기대했던 결승 진출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1500m 금메달 후보’ 김아랑을 끝까지 엄호하며 제 역할을 해냈다.

조해리와 김아랑의 1500m 준결승 레이스는 눈물겹다. 조해리는 경기 초반부터 김아랑을 1위로 올려 보낸 뒤 자신은 중위권에서 적군과 일당백 필사즉생 사투를 펼쳤다.

특히 미국의 에밀리 스캇과 치열한 몸싸움을 펼쳤다. 에밀리 스캇은 바깥쪽으로 조해리를 추월하려 했지만, 조해리는 오른팔을 들어 에밀리 스캇을 밀어냈다. 삐끗한 에밀리 스캇은 현저히 속도가 느려지면서 하위권으로 처졌다.

레이스 중반으로 접어들자 1위 김아랑, 2위 조해리, 3위 캐나다 4위 중국으로 압축됐다. 2위 조해리는 안쪽과 바깥쪽을 넘나들며 하위권 경쟁자들의 추월 의지를 꺾으려 노력했다. 한 마디로 1위 김아랑의 보디가드였다.

그러나 레이스 후반 조해리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판단이 느려진 조해리는 3위 캐나다 선수를 견제하기 위해 안쪽을 비웠고, 그 사이 4위 중국의 리 지안루가 안으로 파고들어 조해리를 추월했다.

지친 조해리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리 지안루를 선두 김아랑 곁으로 보내는 대신, 나머지 캐나다와 미국 선수가 추월을 못하도록 막아섰다. 2위까지만 결승에 진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해리는 패널티(손사용)로 실격 당했다. 김아랑은 언니의 살신성인 도움 속에 지안루에 이어 2위로 골인했다.

올림픽 첫 출전한 김아랑은 예선기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국가대표라는 짐에 억눌렸다는 후문이다. 설상가상으로 8강에서 여유 있게 결승선을 통과했음에도 울음을 터트렸다. 경기 전 구토 증세로 시름시름 앓았던 탓이다. 어수선한 한국 쇼트트랙 현실 때문인지 김아랑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올림픽 2회 출전’으로 경험이 풍부한 조해리는 이런 김아랑을 곁에서 보좌하며 맏언니 역할에 충실했다. 비록 김아랑이 결승에서 넘어져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못했지만, 둘의 진한 우정은 감동적이었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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