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27년째 완공하지 못한 채 평양시내 흉물로 전락한 105층짜리 류경호텔 건설은 당초 일본과의 교역 실패로 인해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북한이 평양에 새로 건설하고 있는 조선중앙은행(왼쪽)과 동북아시아은행(오른쪽)의 본점 건물.ⓒ연합뉴스
북한에서 27년째 완공하지 못한 채 평양시내 흉물로 전락한 105층짜리 류경호텔 건설은 당초 일본과의 교역 실패로 인해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류경호텔 건설은 북한이 1988년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에 헌정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업으로 1986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1992년 완공을 목표했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처음 일본에서 자재를 수입하기로 했으나 일본 측이 돌연 자재 가격을 30배나 올리면서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은 초고층 건물에 적합한 자재를 네덜란드로부터 수입할 계획을 세웠지만 성사될 순간 이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북한은 프랑스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전수받기로 하고 1986년부터 공사에 착수했으나 연이은 자금 조달 문제로 결국 호텔 건설공사는 1992년 중단됐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북한이 네덜란드와 기술합작을 할 수 없었던 배경에는 한 북한 유학생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고 한다.
북한 내부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5일 “공사 초기였던 80년 말에서 9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고층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고급자재가 대부분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만 생산됐던 탓에 북한은 우선 일본에서 공사 자재를 수입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한이 해당 사업을 공표하자 일본이 돌연 자재 값을 30배나 올리는 바람에 한차례 공사가 지연됐다”며 “오죽했으면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자재를 충당하고 건설한다고 했어야지 공표부터 하면 어떡하냐’고 김정일을 탓하는 불만도 나왔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이후 북한은 네덜란드와 손을 잡고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 또다시 수급에 제동이 걸렸다. 바로 체고슬로바키아에서 유학을 했던 한 북한 청년과 네덜란드 여성 사이 빚어진 비극적인 사랑 때문이라는 것.
1986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같은 학급에서 공부를 하면서 사랑을 키워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이 사실이 당국에 보고되는 바람에 북한 청년은 곧바로 북한으로 소환됐고, 이후 두 사람은 이렇다 할 이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됐다.
하지만 이 네덜란드 여성이 바로 북한이 투자를 유치하려고 했던 기업 회장의 손녀였고, 자초지종을 알게 된 회장이 즉시 북한에 자재 공급을 중단시켰다는 것이 소식통의 주장이다.
소식통은 “이때부터 북한 당국도 해당 사건을 종종 거론하며 유학생들에게 일종의 외국 여성을 멀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은 일본, 네덜란드와 자재 공급이 되지 않아 프랑스의 기술 및 자본투자가 이뤄졌지만 계속된 자금문제로 1992년 중단됐다. 이후 지난 2008년 이집트 통신회사인 오라스콤의 투자로 공사가 재개돼 현재 외장공사를 모두 마친 상태이지만 개장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이 때문에 생전에 김일성도 해당 건물을 보고 “기분이 상한다”고 하기도 했으며 김정일도 “평양시의 악”이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최근 류경호텔을 운영하려고 나섰던 스위스 캠핀스키 호텔그룹도 지난해 북한 시장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밝히면서 류경호텔의 미완공 상태가 당분간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CNN에 따르면, 캠핀스키 호텔은 성명을 발표하고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되어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캠핀스키 호텔은 이 성명에서 “처음엔 중국에 있는 캠핀스키의 합작파트너인 KEY 인터내셔널과 베이징서우리지퇀(北京首旅集團)이 류경호텔 운영을 논의했었지만, 시장 진입이 불가능해지면서 이에 대한 계약이 성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한 후 현재까지 개장은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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