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씹은 바나나’ 알베스의 긍정응징 효과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4.05.01 06:49  수정 2014.05.01 10:12

프리메라리가 경기 도중 날아온 바나나 한 입 베어 물고 먹어

인종차별적 모욕성 행위에 재치있는 대처가 캠페인 확산 불러

이들의 인증샷에는 어김없이 '인종차별 반대, 우리는 모두 원숭이다(Say No to Racism, We Are All Monkeys)'라는 메시지가 달려 있었다. ⓒ 수아레스 트위터

다니엘 알베스(31·FC바르셀로나)의 재치 있는 대처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글로벌 인종차별 추방 캠페인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문제의 사건은 지난달 28일 ‘2013-1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비야레알전에서 발생했다. 알베스가 코너킥을 하려는 순간 비야레알 팬들 가운데 한 관중이 알베스를 향해 인종적 모욕의 의미가 담긴 바나나를 던졌고, 그 바나나는 코너킥 지점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코너킥을 준비 중이던 알베스는 그라운드에 떨어진 바나나를 발견했고, 주저 없이 바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배가 좀 고팠다'는 듯 바나나 껍질을 벗기더니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었고, 먹고 남은 바나나를 그라운드 밖에 던져 버린 뒤 입 속의 바나나를 씹으며 코너킥을 이어갔다.

알베스가 바나나를 주워 껍질을 벗겨 입 속에 넣고 다시 경기를 이어가기까지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알베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고, 무덤덤했지만 행동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했고, 강력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뭉개버린 알베스의 이 같은 ‘쿨’한 대응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엄청났다. 우선 유럽의 축구스타들이 바나나를 베어 문 알베스의 행동을 패러디한 인증샷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경기 직후 팀 동료 네이마르가 여자친구와 함께 바나나를 먹는 사진을 올린 것을 필두로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인증샷 올리기가 이어졌다. 세르히오 아구에로, 루이스 수아레스 등이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바나나를 먹는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오스카, 다비드 루이스, 윌리언도 함께 바나나를 든 채 의미심장한 포즈를 취했다. 무사 뎀벨레와 나세르 샤들리, 마리오 발로텔리 등도 동참했다. 이들의 인증샷에는 어김없이 '인종차별 반대, 우리는 모두 원숭이다(Say No to Racism, We Are All Monkeys)'라는 메시지가 달려 있었다.

인증샷 릴레이는 축구계를 넘어 다른 분야에도 이어졌다.

브라질 여자 배구대표 선수 셰일라 카스트로와 타이사 메네제스도 바나나 모형을 앞에 두고 인종차별에 야유를 보내는 몸짓으로 인증샷을 올렸고, 브라질 출신의 모델 아드리아나 리마는 자신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오늘의 룩(look)은 바나나에서 영감을 받은 나의 형제 다니엘 알베스, 네이마르를 위한 것이다”는 메시지와 함께 노란색 의상을 입고 있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과거 이 같은 일이 축구장에서 발생했다면 경기 중이라도 선수가 관중석을 향해 항의를 하거나 심판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고, 이후 유럽축구연맹(UEFA)나 국제축구연맹(FIFA) 차원의 진상조사, 그리고 벌금 또는 무관중 경기 징계 등이 내려졌을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몰상식한 행동을 벌인 관중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제재를 가하기도 어렵고,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나 행동을 개선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

하지만 이번 알베스의 행동은 분명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알베스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 "스페인은 인종차별에 관대한 정서가 있다. 여러 면에서 스페인은 인종차별 문제에서 후진국이나 다름없다”고 돌직구를 날리면서도 당시 자신이 보여준 ‘바나나 응징’에 대해 "바나나를 집어 먹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 못했다. 단지 부정적인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줬을 뿐"이라고 의연한 자세를 나타냈다.

알베스 말대로 그가 관중이 던진 바나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베어 물고 남은 바나나를 경기장 한켠에 던져버린 순간 그 장면을 지켜봤을 바나나 투척의 장본인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 사고방식을 가진 전 세계 축구팬 누구라도 더 이상 바나나를 던지는 행동이 누구도 자극할 수 없는 대신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는 씻을 수 없는 불명예와 불이익을 안길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FIFA 제프 블래터 회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다니엘 알베스는 분노를 잘 참아냈다"며 "월드컵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메시지는 이전에 다른 경기단체장이나 국제기구 수장이 천명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어찌 보면 평범한 내용의 메시지다.

하지만 알베스가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에 '긍정의 행동’으로 보여준 인종차별 추방에 대한 강력하고 무서운 의지와 그에 대한 전 세계적인 '긍정의 리액션’은 과거 수 십 년간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어 온 그 어떤 형태의 인종차별 추방 캠페인보다도 강력하고 긍정적인 '나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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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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