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같은 신불자의 '주홍글씨' "따뜻한 금융 맞소?"

목용재 기자

입력 2014.06.13 13:47  수정 2014.06.13 14:37

은행, 연체정보 삭제하나 '히스토리' 남겨둬…일부는 대출승인 거절도

한 고객이 시중은행 직원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한 은행 소속 대출모집인은 신용대출을 희망하는 고객의 대출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고객의 신용도와 급여수준, 직장, 근속일 등을 따져보니 심사기준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본사로 부터 확인한 결과 승인거절 결정이 내려졌다. 통상 신용도가 4등급 이상이면 신용대출 승인률이 높아 한도와 금리를 최대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대출을 요청했던 고객도 다른 은행에서 이미 대출승인 여부를 확인했던 터라 거절 사유를 설명하기가 막막했다. 이 고객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이 같은 대출 거부건이 있어서 의문을 품었던 대출모집인은 대출실행이 안 되는 이유를 확인하던 중 고객이 과거 채무불이행자(구 신용불량자)였던 사실을 확인했다.

'따뜻한 금융'을 외치는 은행권이 서민이나 경제적 약자에게는 등을 돌리고 있다. 은행들은 연체 이력이 있는 서민들을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찍고선 "서민을 위한 금융을 실천하겠다"며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행의 건전성을 우선하는 대출행태가 비난을 받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은행들은 거래 고객의 '채무·연체 히스토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몇몇 은행들은 과거 장기 연체 이력 등이 있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이같은 히스토리를 참고하고 있다. 자행의 3개월여 이상 장기연체자가 채무를 모두 상환했다고 해도 대출 취급을 제한하고 있는 은행도 있다. '신용불량자'라는 주홍글씨를 평생동안 안고 살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신용도 판단정보'(신용불량자 정보)는 금융소비자가 50만원 이상의 금액을 90일 이상 연체하면 거래한 은행을 통해 은행연합회에 등록된다. 시중 은행들은 관련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이때부터 채무자는 일명 '신용불량자'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은행권에서 대출 받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90일 이내에 빚을 갚거나, 90일을 넘겼더라도 채무 금액이 10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채무를 상환함과 동시에 은행연합회의 신용도 판단정보는 삭제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정보를 공유하고 있던 은행들에서도 관련 정보가 사라진다.

1000만원 이상의 '은행 빚'이 있는 고객이 90일 이상 채무를 상환하지 않은 경우에도 빚만 모두 갚으면 채무를 변제하지 않은 기간(최장 1년)동안만 관련 정보가 공유된다. 만약 7년 동안 빚을 갚지 않고 버틴 사람의 경우에도 관련 정보는 삭제된다.

결국 빚을 모두 갚거나 7년 동안 버티면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채무자가 거래를 했던 은행에서는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여전히 남는다.

고객이 채무를 상환하고 일정 시일이 지나면 연체정보는 삭제하지만 채무·연체 히스토리(거래내역)가 여전히 남아있어 여신정보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자행의 장기 채무 이력이 있는 고객에 대해서는 취급을 제한하는 내부규정도 갖고 있다.

신용불량의 허울을 벗어던지더라도 은행에서는 '금융 전과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애써 채무를 장기간에 걸쳐 갚은 후 시간이 경과됐어도 정상적인 금융거래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게 문제다.

은행들은 고객의 신용불량 정보를 삭제할 법적인 규제도 없을 뿐더러 의무도 없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신용정보법에 의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은행고객들의 채무 기록은 삭제되지만 자행 고객의 기록일 경우 해당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타행과 거래를 통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의 정보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삭제되지만 신용불량자가 자행 고객일 경우 해당 정보를 지울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A은행의 관계자는 "은행들은 자행의 채무자라고 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해당 정보를 삭제하겠지만 해당 고객의 히스토리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정보가 신용평가 요소는 아니다"라면서도 "A은행에서 연체 이력이 있으면 다시 돈을 빌리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B은행의 관계자도 "한마디로 대출을 취급하기 애매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연체 히스토리를 참고하는 경우가 종종있다"면서 "대출 승인이 거부되는 것은 아니지만 5000만원을 신청했는데 은행에서 2000만원밖에 안 된다고 하면 고객은 '대출 거절'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해당 히스토리가 고객 신용을 심사할 때 적용 요소는 아니다. 참고하는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면서 "은행은 고객의 돈을 받아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대출심사를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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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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