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멸적 타격' 스페인 통해 본 홍명보호 희망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4.06.16 06:56  수정 2014.06.16 08:15

가나전 0-4 대패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결과

월드컵 큰 무대 심리적 위축이 최대의 적 '반면교사'

홍명보호는 지난 10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0-4 대패했다. ⓒ 연합뉴스

‘무적함대’ 스페인(FIFA랭킹 1위)이 ‘오렌지군단’ 네덜란드(FIFA랭킹 15위) 십자포화에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네덜란드는 지난 14일(한국시각) 브라질 사우바도르 아레나 폰테 노바서 열린 스페인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스페인 사비 알론소에게 먼저 페널티킥 골을 내줬지만 이후 로빈 판 페르시(2골), 아르연 로벤(2골), 스테판 데 브리가 5골을 합작, 5-1 대역전승을 거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 직후 홈페이지를 통해 "네덜란드의 5-1 완승은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어 "스페인이 A매치에서 5골 이상 내주면서 패한 것은 1963년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4년 전 ‘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 상대끼리의 리턴매치. 당시 결과, 그리고 이후 4년간 진행된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스페인이 네덜란드에 4골차 대패하는 상황은 FIFA의 표현 그대로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큰 이변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다.

브라질월드컵 개막 전 스페인이 그 어느 팀에라도 5골을 허용하는 동안 단 하나의 필드골도 없이 4골차 패배를 당할 것이라 예상한 전문가가 있었을까. 한 명의 전문가가 있기는 했다.

KBS 이영표 축구해설위원은 KBS의 브라질월드컵 프리뷰 프로그램에 출연해 “2000년대 최고의 국가대표팀이 스페인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2014년 월드컵에선 축구 팬들이 스페인의 몰락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스페인이 네덜란드에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대패를 당한 것이 이영표 위원 전망대로 스페인의 몰락을 예감케 하는 시발점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상황을 복기해보면 이날 스페인의 패배는 멤버 구성상의 열세 등 뚜렷한 전력상 열세 탓이라기 보다 선수기용과 전술운용의 오류, 그리고 멘탈 매니지먼트의 실패 등 객관적인 전력과는 성격이 다른 요소로 인해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이케르 카시야스의 볼 컨트롤 실수로 판 페르시에게 네 번째 골 헌납 이후 스페인이 보여준 지리멸렬한 팀 플레이에서 스페인 선수들이 육체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심리적 위축에 지배당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스페인이 네덜란드에 4골 차로 농락당한 것을 확인한 많은 국내 축구팬들은 홍명보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을 떠올리며 이런 혼잣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스페인도 5골 먹고 졌는데 우리가 평가전에서 가나에게 4골 먹고 진 게 대수인가?’. 홍명보호가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0-4 대패를 당하는 과정도 스페인이 네덜란드에 많은 골을 내주면서 패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국 마이애미서 있었던 가나와의 평가전 당시 전반 11분 김창수의 스로인 미스와 그에 이어진 가나의 역습이 골로 연결되며 한국은 초반부터 끌려갔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선제골을 허용한 뒤에도 홍명보호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이 0-1 뒤진 상황에서 전반 39분 손흥민이 시도한 슈팅이 골 포스트를 맞고 나오지 않고 그대로 골로 연결이 됐다면, 이후 경기의 양상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그 골을 기반으로 더욱 더 가나를 몰아붙여 추가골을 터뜨릴 수도 있고, 최소한 전반을 동점을 마치면서 후반을 좀 더 여유 있는 심리상태로 맞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흥민의 결정적 슈팅이 골문을 벗어난 대신 후반 막판 곽태휘의 실책성 플레이에서 비롯된 가나의 역습에 추가골을 얻어맞은 것이 한국 선수들에게 크나큰 부담 속에 후반전을 맞게 만들었고, 심리적으로 쫓긴 상황에서 세 번째 골까지 허용하면서 한국 선수들의 집중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경기 직후 홍명보 감독은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고 생각한다. 문제점을 인식한다면 짧은 시간에도 변할 수 있다. 남은 기간 잘 준비해서 좋은 모습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이튿날 마이애미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에서 마지막 훈련을 끝낸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축구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데 대체 정신력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예전에는 정신력이 한국 선수들의 특징으로 손꼽혔지만 먼저 실점하고 나서 정신력을 통해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나 역시 그런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전에 정신적인 무장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난 두 차례 평가전에서 볼 수 있듯이 좋은 경기를 펼치다가 실수로 실점하는 부분을 고치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가나전 직후 홍 감독이 언급한 ‘문제’로 특정한 전술이나 선수 개개인의 기량의 문제가 아닌 집중력, 평정심 유지 등 정신적 문제임을 알 수 있는 언급이다.

홍명보 감독이나 대표팀 선수들이 스페인의 치욕적 패배를 지켜보며 가나전 대패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차분히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면 무적함대의 침몰은 홍명보호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부디 그랬기를 하는 바람이고, 그랬을 것이라 믿고 싶은 것이 한국축구의 또 한 번의 신화를 응원하는 축구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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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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