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로 죽은 '윤일병들' 보험도 '사각지대'
국방부 단체보험 대상에 병사 제외…예산문제로 난항
민간보험사 보장하는 군 보험, 군 특수성 고려 안해
유가족은 오열했고, 국민은 분노했다.
상습적인 폭행과 성추행, 물고문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가혹행위로 꽃다운 나이의 군 병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국방부나 민간에서 제공하고 있는 보험은 윤 일병과 같은 사고에 대해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아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의 단체보험 대상에 병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아울러 군의 특수성을 고려해 군인보험의 보장범위를 일반보험과 차별화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가가 군인보험의 대상부터 범위까지 총체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국방부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방부는 LIG손해보험과 동부화재, 신협중앙회, 한화손해보험 등 4개 보험사와 계약을 맺고 하사 이상 군인과 군무원, 국방부·국방홍보원 공무원 대상 단체보험에 들었다.
정확한 보험 명칭은 '나라사랑군인보험'이다. 사실상 군 간부를 위한 1년 단위 단체보험이다. 해당 보험은 사망보험금 1억원, 상해후유장해 51% 이상 발생시 최고 1억원, 암 진단시 1000만원 등을 보장한다.
어디까지나 군 간부를 위한 보험이다. 일반 장병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난 4월7일 집단폭행으로 사망한 윤 일병은 보험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울러 지난 6월21일 GOP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 병장이 쏜 총에 숨지거나 다친 일반병사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
앞서 국방부는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지난해 12월 '제2차 군인복지기본계획'을 내놓으면서 올해 안으로 '병사 상해보험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부 단체보험 대상에 일반병사도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예산문제 등으로 이마저도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국방부가 보험사도 아직 선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올해 안으로 병사 상해보험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문제는 국방부의 단체보험을 뜯어보면 민간보험과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군에 특화된 보험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험금 지급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나라사랑군인보험 표준약관을 보면 전쟁이나 외국의 무력행사, 혁명, 내란, 사변, 폭동 등으로 발생한 재해나 사망에 대해선 보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구나 선박승무원과 같은 선박에 탑승하는 것을 직무로 하는 사람이 직무상 선박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특약을 통해 선박 위에서 발생한 상해에 대해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특약일뿐 주 보장은 아니다. 육·해·공군을 아우르는 군인 단체보험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민간보험사가 판매하는 상품도 마찬가지다. 국내 보험사 중 생명보험사는 미래에셋생명, 손해보험사는 메리츠화재가 유일하게 일반병사 대상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보험사가 판매하는 상품 모두 군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대개 장해지급률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식인데 일반실손보험과 비교했을 때 보험료 대비 보장 내용이 턱없이 부족하다.
메리츠화재에서 판매하는 군인보험 표준약관에는 "해병대 및 특전사, 이와 비슷한 위험부대 지원자 및 근무자는 가입이 제한된다"고 나와있다. 또 일반보험과 마찬가지로 전쟁이나 외국의 무력행사, 혁명, 내란, 사변, 폭동 등에 대해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군인보험이지만 군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군인만 대상으로 한 보험'일 뿐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군인보험이 상품가치가 없는 이유는 일반실손보험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만 보더라도 피보험자가 군대에서 공차다가 다칠 경우에만 보장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에서 보험료의 일정부분을 보장하지 않는 이상 전쟁이나 테러 등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선 민간 보험사가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북한군이 총 쏘고 도망가면 쓸모없는 전쟁보험료
국방부 단체보험이나 민간보험 모두 '외국의 무력행사'에 대해선 보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논란은 있겠지만 북한을 다른 국가로 보고, 북한군이 우리 군에 총을 쏘고 도망가면 피해 군인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국가가 보상하게 돼 있지만, 군인보험이 군의 특수성에 맞게 변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 미국 9·11테러 이후 항공료에는 전쟁보험금이 추가됐다"며 "이는 테러나 전쟁발생에 대비해 항공사가 손해보험회사에 가입해 내는 보험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군인보험이라면 전쟁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더라도, 한정된 지역에서 전쟁이 이뤄지는 '국지전' 정도에 대해선 보상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며 "특히 과거 국가가 항공사 전쟁보험료를 지원했던 것처럼 군인보험 일부 손해에 대해 보장하면 상품출시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태풍이나 홍수, 호우, 해일, 강풍 등 일반적으로 보험이 보상하지 않는 천재지변 등을 보장하는 '풍수해보험'의 경우 국가가 관장하는 보험"이라며 "계속되는 군 사고에 일반병사가 사각지대로 꼽히지 않기 위해서는 민간보험사가 아닌 국가가 관장하는 보험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병사 상해보험제도 관련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건의한 상황"이라며 "우선 예산이 나와야 보험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질 지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상 보험상품이나 보장범위, 운용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없이 민간보험사에 넘길 돈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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