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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3인방 깜짝 방남쇼' 연출한 배후 따로 있었다


입력 2014.10.13 09:35 수정 2014.10.13 09:46        김소정 기자

사전에 짜여진 각본대로 사전준비에 역할분담까지

대북 소식통 "김정은 최측근이 언행 검열" 분석

4일 오후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 앞줄부터)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북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대남비서.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있던 4일 북측 3인방의 방남을 놓고 사실상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제외한 최고의 실세들이 방문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12시간 한국에 머무르면서 이들이 보여준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는 대북소식통의 분석이 제기됐다.

대북소식통은 “방남한 인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최고 실세인 것은 맞지만 이들이 북으로 돌아간 뒤에는 한국에서 보여줬던 말과 행동에 대해 평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인물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즉 북한에서 2인자, 3인자로 불리는 이들이지만 김정은의 또 다른 최측근들이 이들의 언행을 검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공항 도착 직후 ‘무슨 일 때문에 방문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룡해 당 비서가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라고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도 돌발적인 즉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북측과 남측이 처음 마주앉은 티타임에서 김양건 대남비서가 모두발언을 담당했던 것이나 오찬회담에서도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얘기가 나왔을 때 김 비서가 나서 수락 답변을 한 것 등이 방남 일정 중 벌어질 사안에 대한 사전준비와 역할분담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오찬회담 내내 양측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다. 한 정부 관계자가 북측 대표단에 “잘 아시는 것 같다. 공부 많이 하셨다”고 하자 북측 대표단은 “인생 자체가 공부 아넵네까”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특히 군복을 입고 있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이날 오찬에서 반주로 나온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남측에서 술을 권유하자 그는 “군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담 관계자도 “남과 북이 오랜만에 마주앉았는데 어떻게 화기애애하기만 했겠냐”며 “양측이 서로 상대방의 발언에 촉각을 세우고 그 속뜻을 헤아리느라 초긴장 상태였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이날 공식 발언은 아무래도 김 비서와 최 비서가 주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비서는 2007년부터 통일전선부장을 맡아 남측 인사들과 접촉한 경험도 많은 데다 3인방 가운데 나이도 가장 많다.

또 최 비서는 과거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위원장을 지냈고, 지금도 중앙당 근로단체비서로 대중 앞에 설 기회가 많다. 대북소식통은 “최룡해는 사로청, 총정치국장, 당 비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 당과 군에서 쌓은 경험이 가장 많은 데다 단체에서 연설을 할 기회도 많았다”고 했다.

반면, 황 총정치국장은 중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었다가 군 총정치국장으로 올랐다. 따라서 사무직에서만 오래 종사했다고 볼 수 있다.

방송 중계영상을 통해 확인한 바로도 김 비서가 가장 노련한 언변을 보여준 반면, 최 비서는 이따금씩 거침없는 발언을 선보였고, 황 총정치국장은 과묵했다.

이런 역할에 맞게 황 총정치국장은 오찬회담장에서 “대통령께 따뜻한 인사를 전해달라”는 인사말을 담당했고, 정홍원 총리를 만나서는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는 미래 지향적인 말을 건넸다. 반면 김 비서는 “대화에 더 늦으면 안된다”는 등 우리 측에 압박을 가하는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관계자는 최 비서의 인상에 대해 “유쾌하고 소탈한 면모가 있었다”고 전했다. 최 비서는 폐막식장 4층 접견실에서 이뤄진 여야 국회의원들과의 회동에서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25년만에 조우하고 “몸이 좋아졌네”라고 인사했다. 이에 대해 대북소식통은 “북한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지인에게 ‘몸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는 인사를 종종 한다. 이는 ‘근심없이 잘 사는 모양이네’라는 덕담에 속한다”고 말했다. 최 비서는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갖다줄 때마다 “고맙다‘고 인사말을 하는가 하면 동치미김치를 더 주문했다고 한다.

한편, 북측 3인방이 돌아간 지 수일이 지나서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인천에서 남측 대표단과 회담을 가진 사실을 짤막하게 보도했다. 그러면서 북한 매체는 폐막식 이후 종합순위 7위에 오르면서 12년만에 10위권에 복귀한 선수단의 성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왔다.

이날 조선중앙방송은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선수단을 위해 전날 평양 목란관에서 연회를 열었다”면서 “연회에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비서가 참석했다”고 알렸다. 이들 외에도 김기남·최태복·박도춘·김평해 당 비서와 로두철·김용진 내각 부총리, 렴철성 군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 당·정·군 고위 인사들이 총 출동했다.

북한은 앞서 이들의 폐막식 참석 소식은 신속히 알렸다. 그러면서도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인천’ 자를 빼고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며,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황병서 동지가 4일 비행기로 평양을 출발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들인 최룡해 동지, 김양건 동지가 동행하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대북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의 보도 행태를 미루어볼 때 황 총정치국장 등 3인의 이번 방남은 북한 입장에서는 공식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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