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단통법'? 통신요금부터 손봐야한다
<이강미의 재계산책> 소비자 외면·골목상권-제조사 '쪽박차는거 아냐?' … 단통법 폐지론 대두
건전한 시장경쟁체제에서 소비자혜택 늘려야
지난 1일부터 시행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소비자-판매자(대리점)-제조사들은 한결같이 단통법의 폐해를 주장하면서 단통법 시행이나 분리공시 대신 근본적인 통신요금 서비스 개선으로 소비자혜택을 늘려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소비자시민단체들은 단통법 시행 보름도 안돼 정부의 과잉규제로 인해 소비자 혜택은 커녕 통신시장을 죽이고 있다면서 1만명 서명운동과 함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통신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의 단통법이 왜 공공의 적이 됐을까. 이는 당초 소비자들의 과도한 통신비 절감과 통신시장 안정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통신비 인하는 커녕 오히려 통신비 부담이 늘어났다는 점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보조금 지원 상한제(30만원)로 인해 단말기 보조금을 축소시켰고, 그에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돌림으로써 결과적으로 통신비 부담을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소비자들은 휴대폰을 구입하면 거의 100% 이통사에 가입을 하는데, 대부분이 6만2000원 요금제나 6만9000원 요금제에 가입한다. 한 소비자가 6만2000원 요금제로, 통신사와 2년간 약정을 맺게되면,소비자들은 통신사에 연간 약 150만원 정도의 통신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이통사들이 타통신사의 가입자 유치를 위해 개인별로 50만원에서 80만원, 경쟁이 격화됐을때는 10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가입자 유치를 위해 혈안이 될 수 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조금 상한선을 제한한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들은 되레 단말기를 비싼 값에 구입하게 됐다. 현재는 통신요금에 단말기 값을 쪼개서 내는 방식인데, 결국 단말기 보조금이 줄어들게 되면서 값비싼 단말기비용 부담을 소비자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는 약정기간 내에 언제든지 고가의 요금제에서 낮은 요금제로 변경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낮은 요금제로 변경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쯤되면, 소비자 편의와 가계통신비를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짐을 지우는 꼴이 됐다.
단통법 역풍은 골목상권까지 덮쳤다. 비싸진 단말기 값 때문에 판매점을 찾은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판매점들도 고객유치를 위해 추가적인 보조금 지원을 하고 싶어도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추가 보조금을 지원하게 되면, 적발시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실제 이달 1~7일 신규·번호이동·기기변경 가입건수는 모두 17만8000건이다. 이중 하루평균 가입자수는 약 2만85000건 정도다. 이는 지난달 판매량인 6만4000건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테크노마트 상인들은 지난 10일 이통 3사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제조사들도 울상이다. 3분기 실적이 반토막난 상태에서 단통법 시행 이후 판매량이 또다시 절반 이상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은 단통법 시행의 역효과가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이러다 쪽박차는거 아니냐’며 한숨짓고 있다.
반면 이통사는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표정이다. 판매점들과 제조사들은 단말기가 팔리지 않으면 당장 실적부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통신요금제를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실적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단말기 판매는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최신 단말기를 구입하면 보조금을 얼마까지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고객들의 환심을 산뒤, 2년 약정으로 비싼 요금서비스제도로 소비자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따라서 개통과 함께 2년간은 매달 꼬박꼬박 통신요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당장 신규가입자가 없더라도 수익에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이통사들은 보조금이 줄어들면 예전보다 마케팅 비용이 크게 절감돼 수익성은 더욱 좋아진다. 따라서 굳이 돈 들여 경쟁사의 가입자를 빼내오지 않아도,현재 가입자만 유지하더라도 크게 손해보지 않는다.
증권가에서도 이동통신사들은 과도한 가입자 확보 경쟁이 사라지고 불법 보조금 마케팅 비용 지출이 줄어들면서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이통 3사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지출한 마케팅 비용은 총 18조원을 넘었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했던 보조금 상한선(27만원)을 넘어선 불법 영업행위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단통법 시행에 따라 올 하반기 이통사 합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5.5%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따라 과열된 통신시장을 진정시키고,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통법 시행이나 분리공시제도 도입이 아닌 통신요금체제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지난 1991년 도입된 요금인가제다. 신규요금제 인가과정에서 후발업체들의 경쟁력을 보장하기 위해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등 사업자간 경쟁유도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20년을 훌쩍넘긴 지금까지도 제도를 지속시킴으로써 이통사들의 독과점체제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때문에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정책에 역행할 뿐 만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통신요금의 담합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받고 있다.
복잡한 통신요금체계도 단순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입시 각종 약정과 위약금으로 묶이고, 실제 높은 요금제를 사용해야 할인율이 큰 현실은 장년층이나 노인층 등 정보소외계층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다. 또한 개인의 서비스이용 취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통화나 문자 사용이 많을 수도 있고, 통화나 문자사용량은 적은 대신 데이터 사용량이 많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통신시장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단말기 가격경쟁과 품질경쟁이 치열하다. 단말기는 제품 값이 비싸거나, 품질이 마음에 안들면 다른 제품을 구입하거나, 아예 해외로 눈을 돌려 애플이나, 중국의 저가폰을 구입하면 그만이다.
장치산업인 통신은 상황이 다르다. 국내 소비자들은 국내 이통3사 외에는 선택의 폭이 없다. 최신 단말기가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유통경로는 결국 이통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결국 이통사들이 제조사들로부터 물건을 받지 않으면, 제조사들은 제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놓아도 고스란히 재고로 쌓일 수 밖에 없다. 이에 제조사들은 이통사들이 원하는 수준의 단말기 지원금을 지불하고서라도 신제품을 이통사에 납품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통신시장에서 이통사들은 ‘갑’이고, 제조사는 ‘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단통법이 실제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포화시장에 수익률이 떨어지는 이통사의 손익을 보존해 주기 위한 정책이라는 비난을 사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누가 얼마만큼의 지원금을 부담하는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얼마만큼의 서비스 혜택을 받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단통법 시행과 분리공시 여부가 아니다. 따라서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하고, 건전한 시장경쟁 체제에서 실질적인 소비자 혜택을 위한 통신요금제도부터 논의돼야 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통신시장 안정보다는 통신시장을 죽이는 단통법이라면 하루속히 폐지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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