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자이언츠 팬들이 5일 오후 부산시 동래구 사직 야구장 앞에서 롯데자이언츠 프런트 운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시작은 같았다.
모두 올 시즌 성적이 나빴고, 정규시즌 종료 전부터 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한화 이글스는 최근 3시즌 연속 포함 지난 6시즌 가운데 무려 5차례나 꼴찌의 굴욕을 뒤집어썼다. KIA 타이거즈는 선동열 감독 부임 후 ‘5위-8위-8위’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롯데 자이언츠 역시 김시진 감독이 부임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 행진이 멈춰섰고, 지난 시즌 5위에 이어 이번엔 7위로 추락했다.
모두 어떤 형태로든 감독의 교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김응용 감독과 선동열 감독은 올해로 계약 기간이 만료됐고, 김시진 감독은 최종전을 앞두고 사임의 뜻을 밝혔다. 팬들은 각각의 팀이 처한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능한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오길 바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세 구단 모두 수뇌부의 뜻과 팬들의 바람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당초 한화는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김성근 감독은 배제된 듯한 분위기였다. KIA는 예상을 깨고 선동열 감독과의 재계약을 발표했다. 롯데는 시즌 중 말이 나왔던 공필성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킨다는 방침이었다.
이에 각 팀을 응원하는 팬들은 구단의 뜻에 강하게 반발했다. 팬 커뮤니티에는 구단 프런트를 비난하는 글로 도배가 됐고, 그 중 일부 팬들은 ‘1인 시위’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기도 했다. 프로야구 사상 유례가 없던 프런트와 팬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구단들은 이러한 팬들의 반응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어떻게든 사퇴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의 과정은 세 구단 모두 비슷했다. 차이는 이후의 대응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팬들의 바람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큰 변화를 수용한 구단은 한화였다. 3년간 2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고 이후 구단 운영에 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팬심을 읽은 한화 김승연 회장이 직접 나섰다는 후문이다.
선동열 감독은 팬들의 격렬한 반대에 밀려 6일 만에 스스로 사퇴 의사를 표했다. 이후 KIA는 지난해 LG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던 김기태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영입하면서 결국 팬들의 뜻을 수용했다. 2년 연속 8위를 기록한 감독의 재계약 소식도 의외였지만, 재계약 6일만의 퇴진과 새 사령탑의 영입은 또 다른 의미를 남겼다.
문제는 롯데다. 단순히 프런트와 팬들 사이의 충돌이 아니었다. 프런트 내부에서도 구단 사장과 단장의 첨예한 대립각이 드러났고, 그 과정에는 ‘선수단 숙소 CCTV 사찰’이라는 빈축을 사는 행위까지 있었음이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팬들의 시선은 감독이 아닌 프런트를 향했다.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앞서 프런트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롯데 구단은 서로가 책임을 회피하는 가운데 이종운 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이에 팬들은 더욱 분노했다.
결국, 롯데는 프런트 내부에서 힘 싸움을 벌였던 두 중심인물이 모두 사퇴했고, 새로운 인물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이미 그 과정에서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종운 감독의 위치도 모호해졌다. 프런트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팬들의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한 감독으로서 시즌을 준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시작은 같았다. 팬들의 격렬한 비난과 반대에 부딪혔다는 점까지도 같았다. 하지만 이후의 대응 과정에서 한화와 KIA, 그리고 롯데가 보여준 반응은 사뭇 달랐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한화, 그나마 낙제점은 면한 KIA, 팬심을 읽지 못하고 계속 헤맸던 롯데. 이 차이가 내년 시즌 성적의 차이로 고스란히 드러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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