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본 김에 제사' 청와대 인사시스템 개편 적기
정윤회 문건이니 십상시니 결국 '인사가 만사'의 교훈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문건 하나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청와대 비선 실세’, ‘문고리 권력 3인방’, ‘십상시’ 등 다양한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그간 수차례 지적돼 온 청와대 인사다.
그간 청와대 인사를 둘러싸고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했고, 어김없이 “인사시스템이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지적됐다. 이번 논란에도 청와대의 인사시스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당장 당 내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다.
때마침 최근 사의를 표명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을 시작으로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연말에 줄줄이 개각을 단행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인사 수요 발생 가능성을 예고했다. 여기에 공직사회 인사 혁신을 위한 인사혁신처도 출범하면서 ‘지금이 인사시스템 개혁의 적기’라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문건’ 둘러 싼 수많은 논란, 결국 핵심은 인사 문제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이 ‘세계일보’에 의해 보도되면서 또 무수한 논란을 발생시키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인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부각된 건 ‘청와대 비선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 씨의 문화체육관광부 인사개입 논란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체육국장 경질이 ‘정 씨의 개입에 의한 대통령 지시’라고 주장하며, 박 대통령이 해당 인사들에 대해 ‘나쁜 사람들’이라고 발언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김종 문체부 2차관에 대해서는 “이재만 비서관과 하나로 묶어 생각하면 정확하다”며 청와대의 인사청탁을 대행해 온 인물로 지목했다.
이에 김 차관은 “이재만을 전혀 알지 못한다”며 유 전 장관의 발언을 전면 부인했다. 동시에 법적 대응을 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양측의 진실공방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정 씨가 문체부의 인사 과정에 있어 개입을 했는지 여부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을 둘러 싼 내용도 마찬가지다.
유출된 문건에는 정 씨가 청와대 3인방을 포함한 십상시와의 송년 모임에서 김 비서실장에 대해 “김기춘 실장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 시점은 2014년 초중순”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담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또 이 최고위원에 대해 “이 수석이 제 역할을 못하니 비리나 문제점을 찾아내 쫓아내라”고 지시했으며, 김덕중 당시 국세청장에 대해서는 “장악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김 비서실장을 제외한 이 최고위원과 김 전 국세청장이 모두 직위에서 물러났다. 청와대와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정 씨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안형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 간사는 8일 PBC라디오에 출연해 “정치에서는 사실보다는 인식이 중요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청와대나 관련 기관에서 알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이 바라볼 때 정 씨의 인사개입에 대한 사실관계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태이며, 오히려 그간 지속적으로 불거진 청와대 인사 문제가 결국은 ‘정 씨의 인사개입 때문’인 것으로 뇌리에 각인되고 있다는 우려다.
“이번 논란 통해 청와대의 인사 및 인사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사실상 ‘정면돌파’를 결정한 듯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정 씨에 대해 “이미 오랜 전에 내 곁을 떠난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다. 3인방의 사퇴 주장에 대해서는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일개 비서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럴수록 정치권에서도 이번 논란이 청와대 인사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적기라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야당보다 오히려 당 내에서 이같은 목소리가 더 부각되면서 연일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 초·재선 중심의 쇄신모임인 ‘아침소리’는 이날 주례회동을 갖고 청와대의 인사시템 쇄신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이 전날 청와대로 당 지도부를 초청해 ‘비선실세’ 문제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힌지 하루 만이다.
아침소리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브리핑을 통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정운영의 투명성이 낮고 대통령의 소통부족에서 발생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청와대의 인사 및 인사시스템을 혁신하고, 이후 대내외적 소통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또 “인사절차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인사추천실명제'를 도입해 특정 인사에 대해 누가 추천했는지 등을 공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향후 문서유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한 친박계 의원도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사실상 정면돌파를 선언한 셈인데, 보다 확실한 것은 인사 개편을 통해 확고한 의지를 알리는 것”이라며 “여기에 그간 문제가 됐던 인사시스템을 제대로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변 여건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인사트라우마’를 극복할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인사혁신처가 출범한 가운데 연말 개각설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의 주 임무 가운데 하나는 말 그대로 ‘인사혁신’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정부 내 인사 구조에 혁신을 줘야 하는 것이다. 집권 2년동안 수차례의 인사실패 모습을 보여준 박근혜정부이기 때문에 인사혁신처가 짊어진 짐은 상상 이상으로 무겁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다양한 개혁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여기에 당장 이주영 해수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퇴설까지 제기되면서 최근 정치권에서는 “연말에 일부 개각이 이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인사 수요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과감하게 하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인사드라이브를 한 뒤 후속 조치로 인사혁신처를 통해 공무원에 대한 인사 시스템을 과감하게 하도록 놔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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