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놓고 의혹? 새정치련의 물타기 화법
<기자수첩>"헌재 결정은 존중하지만 민주주의 훼손" 책임회피 급급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이 연일 꼬이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두고 “헌재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헌재의 결정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책임회피성 발언만 읊어대면서 빠져나갈 구멍 찾기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선언한 19일. 즉각 대변인 논평을 낸 새누리당과 정의당과는 달리, 새정치연합은 1시간이 지난 11시 40분경에야 박수현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나, 민주주의의 기초인 정당의 자유가 훼손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22일 비대위회의에서 "진보당 해산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은 지엄하다. 되돌릴 수 없다.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이내 “정당의 자유 훼손이 우려된다. 헌법에서 헌재 설립 이유는 헌법적 가치의 최후 보루 역할을 기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보다 앞선 10일에도 “나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찬성하지 않고 이석기 의원의 언행도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정당해산 결정은 선진 민주주의국가에선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사실상 ‘해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질세라 당권주자인 박지원 의원과 안철수 전 공동대표를 비롯한 당내 주요 인사들도 속속 트위터를 통해 비슷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제1야당의 언어에는 항상 책임이 요구된다. 정치의 도구는 말이고, 말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의 말대로라면,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할 것을 종용하는 재야 인사들의 압박에는 ‘민주주의 훼손’ 카드를, 종북세력과 선을 그으라는 여당과 여론의 요구에는 ‘헌재 결정 존중’ 카드를 들이내밀면 그만이다.
새정치연합이 좌우 양 측의 화살을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틈만 나면 ‘수권정당’, ‘책임정당’ 운운하던 제1야당의 책임을 스스로 내팽개쳤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대응 순서’도 틀렸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2012년 총선 당시 야권연대를 결성함으로써 통합진보당이 원내 제3당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길을 터줬다. 물론 선거 승리를 위한 정책연대나 야권연대 결성은 절대 비판받을 일이 아니지만, 자신들의 말대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면, 위헌 선고를 받은 정당과의 선거 연대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끼는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당당했다. 오히려 선거 연대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미 해산된 정당과의 과거를 갖고 이랬다 저랬다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평가 자체를 거부했다. 박 대변인은 또 “당시로서는 정책연대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같은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지금 그 당시를 되돌려서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못 박았다.
이들은 더 나아가 ‘헌법재판관 구성’ 문제를 들고 나왔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22일 비대위회의에서 “헌재 재판관 구성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과연 지금의 구성방식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과 가치,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대표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날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헌재 판단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연말을 앞두고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가 선정됐다. 비틀린 권력을 휘두르며 진실을 농락하는 세태를 반영했다는 이유다.
새정치연합이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에 휩싸인 청와대를 향해 연일 ‘지록위마’를 목청껏 높이고 있지만, 통합진보당 해산 앞에 자기 부정에 빠진 제1야당의 모습 역시 올해의 사자성어를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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