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수첩 파문' 당청 불길 잡았지만 당내 불똥은...
청와대, 음종환 사표처리로 확산 차단 의지
목소리 높이는 친이계에 의혹 시선 친박계
정국이 또다시 ‘청와대 문건 유출’로 들썩이고 있다. 검찰의 수사 발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거치면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 내용이 유출되면서 또 다른 파문을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당내에서 김 대표와 친박계 일부 의원들 간 갈등이 빚어지고 가운데, 청와대 관계자, 그것도 친박계와 친분이 깊은 인사가 김 대표를 향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당청간은 물론 소강상태로 접어든 당내 계파 갈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1월 임시국회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12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3년차 국정 운영에 대한 구상을 밝힌 날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본회의장에서 수첩을 보고 있었고, 이 모습이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에 찍힌 수첩에는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바로 윗줄에는 ‘이준석, 손수조, 음종환, 이동빈, 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K와 Y의 정체를 두고 무수히 많은 추측이 난무했지만 결국 K는 김 대표, Y는 유승민 의원으로 밝혀졌다. 또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이 메모에 이름이 거론된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문건 유출 파동의 배후자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당청관계다.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문건 유출 파문을 사과하면서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털고 가려는 시점에 힘을 실어줘야 할 집권여당 대표를 향해 청와대 관계자가 의혹을 제기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다 해야 할 당청이 삐거덕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비박계’인 김성태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김 대표가 ‘별거 아니다’라는 정도 하고 수습하는데, 제3자들이 볼 때는 상당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며 “청와대와 당의 갈등구조가 표면화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청와대가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다”며 구체적인 입장을 보류한 것과 달리 김 대표는 “그런 음해를 당한 것도 사실 기가 막히다(14일, 신년기자회견)”라고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더구나 김 대표는 수차례 고비마다 당청관계에 대해 그동안 ‘문제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당청간) 소통의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라고 털어놨다. 사실상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던 ‘당청 불화설’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바탕 충돌 후 소강 상태 접어들었던 당내 갈등, 수첩 파문으로 심화될 듯
이번에 의혹을 제기한 음 행정관이 대표적인 친박계 보좌관 출신으로 최근에는 ‘정윤회 논란’으로 세상에 알려진 ‘십상시’의 멤버로 지목되기도 했다는 점도 문제다. 그간 김 대표와 갈등을 벌이다 최근 소강상태로 접어든 친박계로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당장 친이계와 친박계가 1차적으로 충돌했다. 박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파문의 핵심 인물로 거론된 비서관 3인방에 대해 ‘재신임 의사’를 밝힌 게 원인이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인적쇄신 대상인 사람들에게 면죄부보다 더 큰 힘을 실어줘버려 진짜로 문고리 3인방이 실세가 돼 버렸다”며 “이제는 문고리 3인방 비서관도 부족해서 행정관이 나서서 온데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데 이렇게 해서 되겠는가”라며 청와대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이 의원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청와대가 기강이 없으니 행정관들이 밖으로 나와 술자리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렇다”면서 “청와대가 그만큼 ‘나사’가 빠졌다는 것”이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친박계도 가만히 당하지는 않았다. 대표적 친박계 의원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 전념하려는 대통령의 의지에 대해 평가를 해줘야 한다”며 “이를 정확하게 못 읽는다면 정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존재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친박계 내에서는 김 대표가 과거에도 본회의장에서 문자를 확인하다 논란을 빚었던 점을 상기시키며 이번 사태도 의도된 것이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기가 막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당내 계파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논란을 일으킨 음 행정관은 이날 오후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곧 사표를 수리한 뒤 면직 처리할 예정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음 행정관은 최근 자신이 했다고 보도된 발언과 관련해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며 “그러나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책임을 지고 오늘 사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