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이중주…임권택 감독 '화장'

부수정 기자

입력 2015.03.22 09:35  수정 2015.03.22 11:11

김훈 작가 단편 소설 영화화

안성기· 김호정·김규리 주연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 ⓒ 명필름

화장품 회사 중역인 오상무(안성기)의 하루는 고단하다. 바쁜 회사 일을 마치고 나면 말기 암 환자인 아내(김호정)를 간호해야 한다. 회사에서 받은 압박, 죽어가는 아내를 봐야하는 오상무의 고통은 전립선 비대증으로 나타난다. 삶에 짓눌린 그는 오줌 주머니를 차고 늙어가는 중년의 남자일 뿐이다.

아내를 헌신적으로 병수발하면서도 젊은 여사원 추은주(김규리)에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환하고 생기 넘치는 은주가 자꾸 떠오르지만 병원에는 아픈 아내가 있다. 욕심이 나고 마음이 흔들려도 절제해야 한다.

오상무는 은주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대신 상상 속에서 탐욕을 분출한다. 젊음과 죽음 사이에서 번민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묻는다. 이 남자를 비난할 수 있느냐고.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은 소설가 김훈의 동명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화장'은 얼굴을 곱게 꾸미는 '화장(化粧)'과 시체를 불에 살라 장사를 지내는 '화장(火葬)'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영화는 서로 다른 소재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인생의 깊이를 묘사한다.

영화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두 여자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는 오상무의 처연한 눈빛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된다. 속된 말로 '불륜'을 저질러 내적 갈등을 겪는 오상무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휘몰아치는 극적 전개 없이 관객의 가슴을 건드릴 줄 아는 임 감독의 세련된 연출미 덕분이다.

영화는 또 죽음 앞에 선 인간을 통해 반복되는 삶의 지루함을 표현한다. 오상무가 아내의 장례식장에서조차 회사 업무를 신경 써야 하는 모습, 개밥을 챙기라고 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 스틸. ⓒ 명필름

임 감독과 8번째 작품을 찍은 안성기는 젊은 여자를 탐하지만 간신히 버티는 오상무를 온몸으로 연기했다. 연기 경력 50년을 자랑하는 그조차 "연기하기 힘들었다"고 말할 만큼 오상무는 깊은 내면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다.

"삶이 연기에 고스란히 투영된 배우"라는 임 감독의 말처럼 안성기는 50년 연기 경력을 오롯이 쏟아부었다. 그는 "내 마음에 담긴 욕망을 드러낸 영화"라며 "삶과 아름다움의 향기에 취한 오상무를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파격 노출을 감행한 김호정에게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캐릭터를 위해 체중 감량과 삭발까지 했다. 남편에게 치부를 드러내기 싫다며 울부짖는 모습에선 같이 울게 된다.

김규리도 제 몫을 해냈다. '아름다움'과 '생생한 젊음'을 상징하는 만큼 예쁘게 나온다. 오상무와의 미묘한 관계를 과장되지 않은 연기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영화는 지난해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됐다. 임 감독은 "나이가 들고 보니 욕망이 끝도 없이 달라붙는 것이 삶이고 그걸 이겨내는 것이 절제의 힘"이라며 "시류나 유행을 타지 않고 욕망과 싸우면서 가는 게 인생"이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원작을 쓴 김훈 작가는 "생로병사는 뒤엉켜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삶 속에 죽음이 있다는 점을 통해 삶의 경건함을 나타내고자 소설을 썼는데 영화에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4월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9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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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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