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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가져다준 해방처럼 남이 던져준 통일은 쪽박


입력 2015.08.18 09:39 수정 2015.08.18 09:41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입 벌리고 감떨어지기 수준 논의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에 걸맞는 글로벌 매너부터 갖춰야

광복(정확히는 일제해방) 70주년! 이제는 통일 운운…! 어차피 통일은 오겠거니! 방방곡곡 서로 앞 다퉈 외쳐댔습니다. 그래야 통일이 빨리 올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냉정히 들여다보면 한국인들은 통일의 카드게임 플레이 방법도 모르고 있고, 당연히 실행능력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저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만 기다린 70년이 그 증거가 되겠습니다. 이대로라면 100주년도 지금의 풍경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개문견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글로벌 문제는 고시처럼 책상공부면 다 되는 줄 쉬이 착각하는 한국인들이 편애하는 거시적 탁상공론 접근방법(Macro Approach)으론 절대 풀어지지 않습니다. 철저히 계산적인 미시적(Micro Approach), 시장원리 및 실행실무(Market Principles and Practices)에 의해서만 비로소 풀어집니다!

가령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EU의 주요 오피니언 리더들의 언어로(in their high-class languages written and verbally as well. 여기서 북한어 역시 노무현-김정일 회담 오전 내내 피차 버걱거렸듯이 완전 외국어입니다!) 작성되고 전달되고 통신·대면접촉 상호 협의되지 않으면, 그리고 그렇게 일할 광범위한 영역의 인력들이 준비되지 않으면, 비즈니스적으로 안타깝게도 good for nothing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오피스 회의실은 물론 전세계 주요도시들의 최고급 프랑스식당과 중국식당(조주식)에서 벌어집니다. 일종의 물밑 작업, 움직이기 쉬운 민간 포함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s Pressing) 전방위 외교라 해도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두서너 시간 논스톱으로 격조 있게 호스트 호스티스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간인·공공부문 글로벌 인재들도 다수 준비되어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극히 죄송하오나, 현재 청와대 공식행사 식사자리에서 국가지도자급 인사분들이 대개 ‘입속에 밥알이 들어있는 채로’ 대화하는 현실수준에서 과연 그런 고상하고 우아한 식사 호스트가 한국 주요 분야 여러분들 중 몇 분이나 가능하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건배동작 하나만 갖고 볼 때도 북쪽이 남쪽보다 오히려 더 선진문명인임을 입증하는 남북회담 행사사진 증거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헛물켜지 말고 꿈 깨셔야 옳습니다!

수많은, 그것도 프로급 일색 고양이들 목에 방울 달 쥐들이 없으면 말짱 황!

그리고 지금 범람하고 있는 한국식 ‘셀프 글’들은 글이 아닙니다. 최소한 독일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도쿄특파원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와서 그의 ‘취재기사’로 상기 주요국 오피니언 리딩그룹 당사자들에게 소개가 되어야, 그제야 글로벌 주도 그룹들이 인정해주는, '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게 로컬을 넘어 글로벌 아젠다를 다루는 글로벌 어프로치로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끼리 우물속에서 (주요 주한 외국인 오피니언 리더들의 표현대로) ‘한국인들 특유의 정신적 문화적 마스터베이션’ 행위로 예우 받게 될 공산이 큽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발표된 시중의 수많은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크나 큰 맹점은‘현실적 실현 내지 숙고 타당한 논지 자체가 아예 부재’하다는 함정(systematic pitfalls)입니다. 하여 외국인들이 비웃습니다. "코리안들은 생각한다는 게 늘 피상적이고 내용에 구체성이 없어!" 라고요. 취재를 해주고 싶어도 해줄만한 ‘꺼리’나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 많은 통일전문가들 중 막상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그저 너나없이 방울 흔들기 경쟁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인 것이지요.

천편일률적 우물안 세계관으론 우주가 나서 도와도 별 수 없어 “각오를 다지자!” “의지를 높이자!” “실력을 기르자!” 70년 동안 변함없는 무책임기조 혀 놀리기 혹은 주먹질입니다. 하나같이 내적인 접근 일색입니다. 그러나 글로벌 현실 세계관 하에서의 모범답안은 ‘외적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면 첫째, 외적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알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외적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외적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최소한의 ‘글로벌 소통 매너’가 이미 구비되어 있어야만 이 문제에 대한 풀이 작업이 비로소 ‘출발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것 아니고는 대개 제 멋에 겨운 달밤의 체조나 ‘떡을 갖고 있거나, 떡을 줄 수 있는’ 주요 당사자 즉, 주변강국들의 정책방향 조정·정리는 생각도 않고, 우리끼리 열심히 바라고 있으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걸로 착각해 ‘김칫국부터 마시고 쓴 글’일 뿐입니다.

언제까지 거국적 ‘징징’거리기?

불행하게도 이 민족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시대와 단절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 수명이 다한 왕조를 우리 스스로 무너뜨리고 새 왕조 혹은 공화국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동학란은 혁명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란으로 끝났습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도 모두 실패한 거사에 불과했습니다. 프랑스대혁명처럼 무능한 왕을 내쫓고 왕비를 단두대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에 와선 그 모든 원인이 외세 때문이었다고, 그 부패한 왕조를 못 지켜준 수치심에 도리어 대한제국을 미화하고 숭배하는 애국(?)적인 일에 열을 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망국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민비(명성황후)조차 미화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 내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하려 듭니다. 과연 이래서야 참다운 역사적 성찰이 가능하겠습니까? 일본에 대한 분개만이 진정 애국일까요?

어쨌든 그렇게 피식민지배로 근현대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자신의 힘으로 해방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외세를 등에 업고 통일전쟁을 했습니다만 통일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치욕의 역사 중 유일한 자존심인 ‘3.1 독립 만세’를 허구한 날 외쳐댑니다. 그리고 그 버릇대로 70년 동안 똑같은 ‘통일’을 외쳐왔습니다. 열심히 ‘징징’거리면 언젠가는 누군가가 또 떡을 입에 넣어주겠지 하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조선 건국 이래 이 민족이 이 땅에서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주인장으로서 살아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젠 기억조차 아득해져 도무지 주인의식이 뭔지, 주인장 노릇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여 국가의 지도자들조차 우물안 세계관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만만한 국민 선동질입니다. 우물안 개구리들의 합창이 우주로 퍼져나가면 통일이 올 것처럼 말입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사고는 아직 1910년의 틀에 갇혀 있다 하겠습니다.

아무튼 한국인들의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단 주변의 도움으로 어찌해보려는 타성이 강한 건 틀림없습니다. 북한이나 일본과 다툼이 생기면 그저 어린아이처럼 ‘징징’대며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심지어 중국에게까지 역성들어달라고 보챕니다. 한국이 더 이상 미개국 내지는 후진국도 아닌데 말입니다. 북한이 사고를 쳤다면야 당장 세계평화에 위협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자국에 직간접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나서지만, 일본과의 역사논쟁엔 자신들이 끼어들 하등의 이유가 없겠습니다.

아베 총리가 ‘시끄럽기만’ 한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두고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더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옆구리 찔러 받는 사과가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게다가 일본에선 총리의 과거사 사과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담화가 그 반증입니다. 언제든 뒤집으면 그만입니다.

글로벌 마인드 없인 창조적 솔루션 불가능

1907년 4월 22일, 서울을 떠난 이준 열사가 헤이그로 가는 중간 경유 겸 막후교섭지로 제정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는 그곳 상류층 사교무대에서 맨투맨 대면(face-to-face) 설득작업을 벌렸습니다. 그 결과 당시 현지신문 사교계 동정란 기사에 실리는 행운을 잡습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무당 샤먼과 같은, 검은 갓에 흰 두루마기 차림의 조선 선비의 느닷없는 출현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는데, 점차 그의 원숙하고 품위 있는 사회적인 인격체 풍모에 매료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경청하게 되었고, 결국 상당수 인사들이 조선의 처지를 이해 공감하게 되어 필요한 지지 활동을 베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물론 이준 열사가 헤이그까지 그 차림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주목을 끌기 위해 계획된 퍼포먼스였을 뿐이지요. 그와 같이 해방 70년을 맞아 우리끼리 거국적으로 ‘징징’댈 것이 아니라 8.15 경축행사 단상에 생존한 정신대 할머니들을 모시는 깜짝 이벤트라도 벌려 세계인들의 인류보편적 도덕심(Global Agenda among Civilized Societies Citizens)에 호소했어야 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글로벌 고양이(5자+EU) 목에 방울 다는 문제에 있어 최우선 과제, 기본 조건(Basic Platform)은 글로벌 통용가능 소통매너입니다. 글로벌적 세계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국근성, 하인근성으론 절대 우물 안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렴 남이 가져다준 해방처럼 남이 던져주는 통일 역시 대박이 아니라 쪽박일 게 분명합니다. 오천만의 안방 개구리의 합창 대신 바다를 건너가서 목숨 걸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맞장 뜨던 사명대사 같은 글로벌 용사를 찾아내야 하고, 없으면 지금부터라도 길러야 합니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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