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노조의 "적자는 난 모르겠고, 임금 올려줘"

박영국 기자

입력 2015.08.30 09:50  수정 2015.08.30 09:51

<기자의 눈>임원들은 임금반납·자사주 매입…노조는 임금동결도 '불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원들이 26일 울산 노조사무실 앞에서 파업출정식을 진행하고 있다.ⓒ현대중공업노동조합

“지금 현대중공업은 몸집을 한 80% 줄여야 산다. 주가 쪽은 이미 그렇게 떨어져서 시가를 반영하고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 주가는 고점 50만원에서 8만원으로 깎였다. 당연히 임금도 그만큼 삭감시키거나, 그게 안 될 경우는 인원을 줄이는 게 당연하다.”

최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호옹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 글의 작성자는 자신을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32세의 사업가이자, 현대중공업 주주라고 밝히고 노조를 비난하는 글을 잇달아 올리며 현대중공업 노조원들과 게시판 내에서 치열한 언쟁을 벌였다.

회사는 지난해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단행한 현대중공업 노조를 비난하는 게 주 내용이다.

물론 회사 주가가 떨어졌다고 그 비율만큼 직원들 임금을 줄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회사의 적자는 경영진 책임인데 왜 묵묵히 일한 근로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하느냐는 노조 측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기업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종업원들의 고용과 임금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할 의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3조원대 적자로 인해 자산을 팔아가면서까지 유동성 위기를 막는 처지인데다, 올해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에 큰 폭의 임금인상에 성과급까지 요구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기본급의 6.77%에 해당하는 12만7560원 인상과,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성과급 250% 이상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연간 3300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올해 ‘조단위 적자클럽’에 합류한 다른 조선업체 노동자 단체들도 약속이나 한 듯 12만원 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을 포함한 9개 조선업체 노조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련)는 내달 9일 공동파업을 결정한 상태다. 파업 명분은 ‘사측이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임금 동결안을 내놓고 잘못된 경영으로 빚어진 경영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 개그 프로그램의 대사처럼 “조단위 적자는 난 모르겠고, 잘못한 게 없으니 임금을 올려 받아야겠다”는 식이다.

조선노련이 경영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한 경영진은 대부분 교체됐고, 새 경영진도 노조에게만 고통분담을 요구한 채 자신들은 희희낙락 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의 경우 지난해 11월 “회사 경영이 정상화 돼 이익이 날 때까지 급여 전액을 반납하겠다”고 밝힌 이후 지금까지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이 회사 임원들은 지난해 10월 이후 100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대우조선해양은 정성립 사장 이하 전 임원이 9월부터 임금을 반납하기로 했다. 올해 성과급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년 연봉대비 임금이 35~50%가량 삭감되는 셈이다.

또한 현대중공업 임원 수십 명이 자사주 매입운동에 나섰으며,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임원들도 잇달아 자사주를 매입했다. 최근 조선업체들의 주가가 가파른 하향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들의 희생에 굳이 ‘숭고함’이라는 미사여구를 갖다 붙일 필요도 없다.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단 회사부터 살려야 하니 당분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업계 노조들은 이런 단순한 논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임원들처럼 임금을 반납하거나, 삭감하거나, 주식을 사라는 것도 아니고 ‘동결’ 하자는 것인데 그조차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

쌍용자동차라는 대기업이 무너지며 직원 2600여명이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게 불과 6년 전인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듯하다.

노조와의 관계 악화가 선주들 귀에 들어가면 수주에 좋을 게 없다. 수주가 안 되면 회사 사정이 더 어려워진다.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터와 관련된 일이다.

조선노련은 내달 2일 대표자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파업 일정과 범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부디 그 자리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