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혁신적이었던 아스날 벵거의 축구철학과 팀 운영은 더 이상 새로움보다는 보수적인 느낌에 가까워지고 있다. ⓒ 게티이미지
무관 위기에 놓인 아스날이 아르센 벵거 감독의 거취를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다.
아스날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EPL) 우승 경쟁에서 밀려난 가운데 잉글리시 FA컵에서도 탈락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사실상 탈락 직전이다. 이미 유럽 현지 언론들은 아스날이 무관으로 올 시즌을 끝낼 것이 유력하다고 전망한다. 그 어느 때보다 아스널의 우승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됐던 시즌인 만큼 팬들의 실망은 곧 벵거 감독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
벵거 감독은 1996년부터 아스날의 지휘봉을 잡았다. 20년간 아스날이 놀라운 성공을 거둔 중심에는 벵거 감독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스날이 무관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벵거 감독의 역량을 바라보는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스날이 신축구장 건립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으로 대형 선수들을 영입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강한 면죄부가 되어왔다. 오히려 한정된 자금과 자원 속에서도 내실 있는 영입과 유망주 육성으로 리그 3~4위권과 챔피언스리그 16강 이상의 성적을 유지해온 벵거 감독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스날은 이제 메수트 외질, 알렉시스 산체스, 페트르 체흐 등 매년 월드클래스급들을 영입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좋아졌다. 벵거 감독이 공들여온 유망주들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이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해야할 시점이다. 더구나 올 시즌에는 첼시, 맨유, 맨시티 등 전통의 강호들이 동반 부진에 빠지는 보기 드문 행운까지 따랐다. 모든 면에서 아스날이 우승을 차지하기에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아스날은 올 시즌에도 고비에서 약해지는 징크스를 반복했다. 몇 년째 반복되는 아스날 주축 선수들의 부상 병동과 시즌 후반의 뒷심 부족은 이제 고질병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몇 년째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학습 효과가 전무한 벵거 감독의 고집스러운 팀 운영과 축구철학이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안티 벵거론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여전히 벵거 감독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벵거 감독은 여전히 유럽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며 대안도 없이 성급하게 감독 교체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구단에 역사상 최고의 성공을 안겨준 감독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아스날 최대 라이벌인 맨유의 레전드 출신인 데이비드 베컴은 벵거 감독의 경질을 주장하는 플래카드를 내건 팬들을 향해 “축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관심병자들”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아스날 구단은 올 시즌 우승컵과 상관없이 여전히 벵거 감독에 대한 지지가 굳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벵거 감독과의 계약 연장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누가 와도 아스널에서 벵거 감독만큼 훌륭한 감독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있는 반면 “구단이 벵거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 큰 야망보다는 안정된 수익과 현상 유지일 뿐”이라고 매너리즘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벵거 감독은 여전히 유능하지만 어느덧 칠순이 가까운 고령의 지도자가 됐다. 20년 전 혁신적이었던 그의 축구철학과 팀 운영은 더 이상 새로움보다는 보수적인 느낌에 가까워지고 있다. 자존심과 승부욕이 누구보다 강한 벵거 감독이 팬들의 신뢰를 잃은데 실망해 스스로 물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벵거와 아스날의 동행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