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총선 뜨거운 현장을 가다-경기 남양주갑>
"정치에 이제 관심 없어" 투표율이 변수될듯
20대 총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지만, 표심은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다. 선거판을 주도할 이슈의 부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상승으로 부동층만 30%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격전지'가 늘어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데일리안은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로 꼽히는 지역을 직접 찾아가 조명했다. < 편집자 주 >
올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은 970만 관객을 돌파한 '검사외전'이라 할 수 있다. 유명 배우 황정민과 강동원이 출연했고 예측불허의 스토리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수 많은 이슈가 있는 20대 총선에서도 '검사외전'이 펼쳐지게 됐다. 검찰 선후배 사이인 새누리당 심장수·더불어민주당 조응천 후보가 격돌하는 경기 남양주 갑에서다. 여기에 시민운동가 출신 유영훈 국민의당 후보까지 가세했다.
남양주는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은 베드타운이다. 2011년 약 58만 명 수준이던 인구는 2015년 약 65만 명까지 늘어나는 등 매년 3% 인구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현역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최 의원은 남양주 갑에서만 내리 3선을 했다.
그러나 남양주는 원래 여당세가 강한 곳으로 분류된다. 단일선거구였던 16대 총선까지는 여당에서 많은 표를 가져갔고, 17·18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득표율이 더 높게 나왔다. 3선의 이석우 남양주 시장도 새누리당 소속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 1일 현장에서 '데일리안'과 만난 남양주갑 유권자들의 눈은 대부분 여당 후보에 쏠려 있었다. 오랜 기간 당협위원장으로 지역을 다져 온 심 후보에 대한 호응이 많았다. 최근 여론조사 역시 '지역 토박이' 심 후보가 '정치 신인' 조 후보에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중부일보와 리얼미터가 지난달 27, 28일 경기 남양주갑 거주 성인 남녀 506명을 대상으로 유선전화 임의걸기(RDD) 자동응답(ARS) 및 스마트폰앱 방식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심 후보는 46.1%, 조 후보는 23%의 지지를 얻었다. 국민의당 유영훈 후보는 10.0%였다.
(응답률은 2.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4.4%p다. 통계보정은 성, 연령, 지역별(2016년 2월 행자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가중값을 림가중 방법을 적용해 부여했다.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순항 중인 심장수, 지역 여론도 호의적
심 후보는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으나 공천 결과에 불복한 박상대 후보가 '친박연대'로 출마, 보수표가 분산되며 불과 712표 차이로 낙선한 아픈 기억이 있다. 19대 총선에서도 나섰으나 새누리당이 송영선 전 의원을 전략 공천해 본선에 나서지 못 했다.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그는 그러나 지역에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해 왔고 8년 가까이 당협위원장을 지내온 경험을 내세우며 '지역 밀착형' 후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심 후보는 1일 오전 선거사무소에서 본보와 만나 "여기서 당협위원장도 오래 해왔고 10년 가까이 변호사를 했기 때문에 그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며 "계속 여기 살아왔으니까 지역 현안을 마음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어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심 후보의 말처럼 지역민들은 심 후보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있었다. 침구류를 판매하는 50대 여성 이모 씨는 "심장수 쪽으로 쏠린다. 조응천은 여기와 연고도 없지 않나. 현역 의원을 교체해야 한다는 감정이 큰 건 아니지만 이 지역과 연고가 없는 후보가 오는 것엔 반감이 있다"고 주장했다.
찜질방을 운영하는 40대 여성 김모 씨도 "손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심장수 쪽으로 쏠린다. 지역 특성상 고령층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머님들이 주로 심 후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김나현(46·여성) 씨도 "나는 당을 안 보고 인물을 본다. 진실성이 있는지를 제일 중요하게 본다. 과묵하고 점잖은 심 후보가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60대 남성 이모 씨도 "전반적으로 1번에 쏠리는 분위기다. 야권이 합치면 몰라도 이제 경기도는 야당 안 된다. 무조건 1번이 될 것"이라고 했고 70대 박모 씨도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지만 김무성(새누리당)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고 털어놨다.
심 후보는 이런 여론을 인지한 듯 "지역민들을 만나다 보면 반응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여론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소통하고 잘 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2040 청장년층에서 '약진' 조응천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내다 문재인 전 대표의 마지막 영입인사로 인해 더민주에 입당한 조 후보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하던 때 비선 실세 문건 파동으로 더욱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남양주의 뽀통령'이 돼 종횡무진 선거유세를 다니고 있었다. 비록 심 후보와의 여론조사 결과가 더블스코어로 차이가 나고 있음에도 자신만의 선거전략으로 판세를 뒤집으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오후 3시 남양주시 호평이마트 앞 사거리. 조 후보는 '부당한 권력에 맞선 사람!'이라 적힌 본인의 명함을 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 손에 명함을 받아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시민도 있는 반면 명함 내민 손이 무색하게 앞만 보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40여분간 명함을 돌리던 조 후보는 파란색 유세차에 올랐다.
그는 "우리 호평동은 참으로 자존심 높고 눈썰미 까다롭고, 입맛 까다로운 그런 분들이 계신 곳으로 안다. 특히 교육열이 높아 왠만한 스펙에는 눈도 깜짝 안 하는 곳으로 안다"며 "이곳 호평동에 꼭 맞는 후보, 조응천이라고 자부한다"고 외쳤다. 이어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공부도 잘했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 '김앤장'에 갔다. 이 정도면 호평동 까다로운 눈높이에 맞는 스펙이라 생각하는데 맞나?"며 시민들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조 후보는 "공직자로 살아오며 갈고 닦은 경험과 지식,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남양주를 보다 살기 좋고 보다 빠르고 건강한 도시로 만들 수 있다"며 "식당에서 서빙하며 살아온 을의 경험으로 지역경제의 어려움, 특히 자영업자 여러분들의 애환을 씻어드릴 수 있다. 조응천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대부분의 노년층이 그냥 지나쳐간 반면 20~40대 청장년층들은 한동안 조 후보의 연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들과 함께 조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켜보던 40대 남성은 "조 후보는 검사로 시작해서 바른말을 하다가 정부에서 팽 당했는데 소신있게 야당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심 후보는 지역에서 당협위원장을 하는 등 조직이 있기 때문에 조 후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본인을 더 알리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략공천이 돼서 그 부분이 안 좋은 이미지로 비칠까해 아쉬운 부분이 좀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50대 남성도 "조응천 씨가 됐으면 좋겠다. 심장수 씨가 여기서 몇 번 떨어져서 이름만 머리에 남아 찍는 것이지 그 사람은 그것 외에는 내세울 게 없을걸?"이라고 했다. 대학에 재학 중인 한 20대 여성은 조 후보에게 "힘내세요. 화이팅"이라고 외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부족한 인지도 탓인지 조 후보에 대해 냉담한 시선을 보내는 반응이 많았다. 60대 남성 이모 씨는 "심 후보가 될 것 같다. 최재성이 불출마 선언을 해버리니까 맥이 탁 풀려버렸잖아"라고 말했으며, 한 70대 여성은 "조응천이 누군지도 모른다. 투표도 안 할거다"라고 했다. 80대 남성은 "조응천 이름은 들어봤는데 일을 잘못 처리하고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조 후보 측 관계자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아시는데 모르시는 분들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데 관심은 그래도 많이 가져주신다"며 "정치초년생이니까 최대한 지역민들과 많이 만나 접촉하며 인지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야권연대' 목소리가 들리는 만큼 유 후보와의 연대도 고려하는 모습이었다. 이 관계자는 "(조 후보) 본인은 단일화 계획이 계속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양주갑은 절대 야당이 유리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단일화를 심도 깊게 논의해보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 후보 측 관계자는 "단일화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열심히 하고 있고 바닥에서 지지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여론조사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시민운동가로 일해온 유 후보는 경춘선을 연결해 남양주를 서울 북부권과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자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그는 인지도가 낮지만 선거운동 과정을 거치면서 당 지도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유력 후보로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20대 남성 백모 씨는 "나는 개인적으로 여당 성향"이라면서도 "국민의당을 찍을 것이다. 3당 체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지했다.
경기 남양주갑에 '선거 무기력증' 모락모락
후보에 대한 기호를 명확히 나타내는 지역민도 있었지만 본보가 둘러본 남양주갑의 전반적인 민심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선거에 대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비교적 노령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수동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요새 사회나 경제가 워낙 안좋다 보니 선거에 크게 신경을 기울일 새가 없다. 그까짓거 해봐야 뭐하나 이런 분위기다"며 "기껏 찍어줘봐야 국회의원들은 도둑질이나 하는데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선거에는 무관심해진다"고 말했다.
20대 남성 이모 씨도 "최재성 의원이 불출마했는데 이번에 나오는 후보는 대충 이름은 아는데 자세한 경력은 모른다"며 "다들 이 동네 지하철을 뚫겠다고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데 별로 접근성도 없어 보이고 쓸 데 없는 낭비 같다. 누구 뽑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투표를 안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형마트 인근의 상인들도 '선거'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식당을 운영하는 30대 부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누가 이번 선거에 나오는 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으며, 금은방집을 운영하는 50대 남성도 "선거를 안 할 거다.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한 20대 남성은 '선거를 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투표하러 갈 시간도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가던 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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