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뽑아준' 친박 뜻대로 움직이는 정진석?
관리 비대위·복당 유보 등 친박 구상대로 흘러
“계파 눈치 안 본다” 강조하며 우려 불식 시도
“저는 특정계파 눈치 보지 않는다. 청와대와 긴밀하게 협의하겠지만 청와대의 주문을 여과 없이 집행하진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 ‘정진석호(號)’가 보이지 않는 손에 방향키를 넘겨준 모양새다. 계파 중립을 강조한 정진석 원내대표가 임기 초반부터 주류인 친박계의 입김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가에서는 정 원내대표가 지난 3일 당선됐을 당시 그를 ‘친박계’로 분류했다. 그가 친박계의 물밑 지원으로 당선됐다는 점에서다. 총선 참패 이후 ‘자중 모드’를 이어가던 친박계가 정 원내대표를 사령탑에 앉힌 후 향후 당권과 대권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정 원내대표가 원외 인사이기 때문에 당의 입지가 공고하지 않다는 점도 우려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러한 우려는 9일 원내지도부 인선 결과를 놓고 더욱 커졌다. 원내수석부대표 김도읍 의원, 원내대변인 김명연 의원·김정재·민경욱 당선인, 공동부대표 오신환 의원과 강석진·권석창·김성원·성일종·이만희·이양수·정태옥·최연혜 당선인이 ‘정진석호’에 올라탔다. 정 원내대표는 지역 안배와 전문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지만, 면면으로 볼 때 대부분 친박계 인사라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유리한 당권 구도를 잡기 위해 주요 자리에 포석을 깔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 원내대표가 9일 김도읍 원내수석, 김명연·김정재 원내대변인과 가진 첫 티타임에서 “사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자주 교류하지 않아 제가 잘 모른다”고 말하면서 이를 방증했다.
정 원내대표가 친여 성향 무소속 당선인의 복당 논의를 유보한 것도 친박계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20대 국회 원 구성 협상 전에 복당은 없다”며 “복당 문제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결론을 (당선인들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선거를 치렀다. (그들이) 당선되고 나서는 자기 정치를 한다고 해 이렇게 갈라서게 된 것”이라며 친여 성향 무소속 당선인의 ‘복당 불가’ 방침을 강하게 표명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친박계는 더욱 강하게 복당 불가를 주장해왔다.
비대위의 성격도 ‘관리형’ 결정 나면서 결국 친박계의 입김이 본격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친박계는 전당대회까지 쇄신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한시적인 ‘관리형 비대위’를 띄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총선 참패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당의 쇄신 작업이 본격화되면 당권 장악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결국 친박계의 구상대로 흘러가면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원내대표가 되겠다”며 계파정치 청산을 외쳤던 정 원내대표가 표리부동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도 함께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친박계가 당선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비박계에 뚜렷한 대권 후보도 없는 상황에서 친박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건 힘들다”라며 “앞으로 정 원내대표를 향한 친박계의 입김이 많이 작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듯 정 원내대표는 9일 당선인총회에서 “특정 계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0일 오전에도 예정에 없던 기자 간담회를 열고 “어제 (비대위 성격 관련) 한 말의 강조점은 당 지도부 공백이 장기화되면 안 된다. 당 안정화를 위해 전당대회가 7월을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안하는 개인의 의견을 전한 것”이라며 “당선인 말을 경청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사안사안을 결정해 나가진 않을 것이다. 충분히 소속 의원들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당선인 모두에게 비대위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여기에는 ▲관리형 비대위 ▲관리형 비대위 + 별도 혁신위 ▲진단 비대위 ▲혁신 비대위 등의 선택지가 담겼다. 친박계가 주장하는 관리형 비대위 체제로 굳어진다는 당 안팎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조차도 골자를 살펴보면 ‘관리형‘에 치중돼 있어 결국‘명분 쌓기’라는 지적이다. 비난을 의식한 듯 정 원내대표는 11일 중진연석회의에서 관리형 비대위를 띄우되, 별도의 혁신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정 원내대표가 온전히 친박계의 지지만 얻어 당선된 게 아니며, 계파 청산과 ‘청와대 거수기’ 탈피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우려는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정 원내대표가 복당 문제를 유보한 것은 계파 논란을 떠나 총선 민의를 받드는 올바른 결정”이라며 “총선 참패 이후 친박-비박이라는 계파에 대한 염증이 당 내에서 깊어지고 있는 만큼 어느 계파에 치우쳐 당내 현안과 관련해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은 정 원내대표의 행보에 따라 확대되거나 불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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