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곽도원 "나만 미치면 영화는 잘 나와"

이한철 기자

입력 2016.05.11 07:20  수정 2016.05.15 09:49

첫 주연 '곡성' 호평 "그래서 더 부담"

"배우도 예술인, 세상 바꿀 수 있다"

곽도원이 생애 첫 주연을 맡은 영화 '곡성'에 대한 평단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착한 사람 아닌데" 기댈 곳 없었던 영화 '곡성'

"'내가 아는 당신은 할 수 있다'고 주입식으로 자신감을 심어줬어요. 결국 기댈 테니까 많이 도와 달라고 했죠."

무려 20년 만에 첫 주연이다. 배우로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연기자 곽도원(43)이지만, 더 무거운 책임감이 뒤따르는 '주연배우'란 타이틀이 여간 큰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는 그를 붙잡은 건 나홍진 감독의 믿음과 신뢰였다.

11일 전야 개봉하는 '곡성'은 '추격자(2008)', '황해(2010)'를 잇는 나홍진의 세 번째 문제작이다. 곡성의 한 마을이 의문의 연쇄사건들로 발칵 뒤집히고, 모든 사건의 원인이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곽도원은 이 작품에서 목격자 무명(천우희)를 만나 외지인에 대한 소문이 사실임을 확신하고, 피해자들과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딸 효진(김환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 종구를 연기한다.

이 작품을 통해 '악역 전문배우' 이미지를 벗고 연기 스펙트럼을 한 단계 더 넓혔다는 평가다. 곽도원은 "자식도 없는 나를 왜 아버지 역할로 캐스팅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부담스러워했지만, 작품 속 곽도원은 '인생 연기'라는 찬사가 나올 정도로 열연을 펼쳤다.

자신의 이름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오히려 황정민, 쿠니무라 준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 뒤에 놓였다. 그만큼 자신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특히 "전 재산을 투자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그의 말에선 흥행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도 읽을 수 있었다.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선배들이 하는 거 보면 아우르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고 희생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착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 점들이 굉장히 큰 부담이었어요."

다행히 언론 시사회 후 호평이 쏟아진 데다, 흥행 전망이 밝아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곽도원은 "그래서 더 부담이 된다. 일반 관객들 반응과 평론가 반응이 상반된 경우도 많지 않느냐"며 조심스러워했지만,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낸 듯 그의 표정은 밝았다.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은 곽도원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영화에 미친 사람들, 혼이 담긴 작품 '곡성'

'곡성'은 쉽게 설명하기 힘든 작품이다. 조금만 깊게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고, 또 작품의 결말에 대한 해석은 관객들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현실과 초현실,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을 넘나드는 기괴한 분위기도 기존 작품들과 궤를 달리 한다.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며 역으로 질문을 던진 곽도원은 "플롯이 탄탄하게 잘 짜였다는 생각을 한다. 외지인, 일광(황정민), 무명 등 세 명이 모두 종구에게 조언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건을 벌이고 있다. 현혹되지 말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현혹되게 만든다"고 영화의 장점을 설명했다.

배우들은 촬영 현장이 끔찍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곽도원 또한 "체력이 고갈돼 정신력으로 버텼다"며 혀를 내둘렀다. 나홍진 감독의 지독함(?)은 이미 '황해' 때 경험했지만, '곡성'은 기대한 만큼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4개월 정도로 예정됐던 촬영 기간은 1달 반가량 오버됐다. 심지어 나홍진 감독은 남몰래 입원, 병원에서 출퇴근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어느 선배님은 '현장에서 감독 미치고 촬영감독 미치고 주연배우 미치면 영화는 잘 나온다'고 하셨어요. 나홍진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은 워낙 미쳐 있기로 유명하니까 저만 미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나홍진 감독의 섬세함과 철두철미함은 상상 이상이다. 의상팀과 분장팀을 통해 배우 컨디션을 파악하고 촬영 순서를 정한다거나, 의상의 색감 질감을 직접 챙긴다. '곡성'의 경우엔 무려 1년 2개월의 편집 기간이 걸렸을 정도로 완벽주의자다.

"그만큼 집요하게 작업해요. 웬만하면 타협할 만한데 자기가 목표를 정해놓으면 타협이 없어요.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선까지 반드시 가야 해요. 현장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죽을 것 같이 열심히 하는 모습도 대단해요."

곽도원은 아직 송강호·황정민 같은 대선배와의 비교는 무리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배우가 갖춰야 할 '개똥철학'

노력은 이제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것도 그 중 하나다. 곽도원은 이 작품으로 생애 처음 칸에 진출하게 됐다. 또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를 제치고 예매율 1위를 기록, 흥행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곽도원 또한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못지않게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하지만 곽도원은 "주인공 한다고 해서 무조건 잘하는 게 아니다"며 '형님들'과의 비교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눈도 있어야 하고, 일상에서 갖고 있는 삶의 철학이 분명히 있어야 해요. 작품으로 어떤 얘기를 하고 싶다는 개똥철학이 있어야 당당해질 수 있고 사명감도 생기죠. 무턱대고 작품을 한다고 해서 형들과 같은 반열에 오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이 '변호인'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변호인'이 배우도 예술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송강호의 명연기에 뒤지지 않는 곽도원의 카리스마는 이 작품이 건진 가장 큰 소득이었다.

"배우라는 존재는 소모적이면서도 연출과 작가의 말을 대변하는 사람, 기능인 정도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변호인'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배우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그 감동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구나. 배우는 그런 존재란 걸 깨달았어요."

그만큼 연기자로서의 자세도 달라졌고, 그러한 마음가짐이 '곡성' 속 종구에게도 그대로 투영됐다. '변호인'이 배우로서의 철학을 바꾼 첫 번째 변곡점이었다면, '곡성'은 배우 곽도원의 진짜 가치를 세상에 알린 두 번째 변곡점이 될 게 분명하다.

"시나리오를 받은 후부터 2년간 준비하고 만들었어요. 후회 없을 만큼 노력했고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상업 영화니까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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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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