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하]“유료소개업이 점령한 새벽인력시장…이제는 만남의 장소”
<새벽 인력시장 및 건설현장 이야기(하)>“달라진 새벽인력시장…그리고 4시간 안전교육”
새벽 인력시장 및 건설현장 이야기(하)
“유료소개업이 점령한 새벽인력시장…이제는 만남의 장소”
말끔한 옷차림의 한 남성이 쪼그려 앉아 있던 무리에게 말을 건넸다. “간단한 목수일인데 일할 분 있어요? 근데 돈은 조금 밖에 안 줘요” 무리중 한 명이 물었다. “일당이 얼마인데요” “**만원.” “현찰이예요?” “아니요 사인지예요.” “어려운건 아니고 요만한거 뭐 잘못됐다는데 수정만 하면 된대요.” 모두들 선뜻 반기는 표정은 없다. 이내 고개를 가로 젖는다. 자리를 뜨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누군가 토로하는 소리가 들린다. “에이. 그렇게 하면 10년을 해도 안 가지”
푸르스름한 여명이 감도는 18일 새벽 4시 30분. 이른 시각부터 서울 구로구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사거리에는 수백여명의 남성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있었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사람, 군복 하의를 입은 사람, 등산복 차림의 사람. 저마다 행색은 달랐지만 대부분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이들은 서너명 또는 두명이서 짝은 지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이는 건물 계단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사람들을 응시했다. 담배연기와 시끌벅적한 잡담소리,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같은 공간에 뒤섞여 있었다.
이곳 남구로역 사거리는 매일 아침 서울·수도권 건설현장으로 갈 인력을 공급하는 수도권 최대 규모의 인력시장이다. 비가 오는 날은 제외하곤 거의 매일 노동력이 거래된다. 새벽녘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만 평균 600~7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막노동을 하는 근로자부터 외국인 노동자, 건축현장에 꼭 필요한 목수 등의 숙련공까지 저마다 다양하다. 새벽 4시가 되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가 6시가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인력시장에서 30년 넘게 일했던 한 관계자 말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는 이 같은 인력시장이 남구로역, 양천구 신정동, 중랑구 면목동, 관악구 신림동 등 4곳에서 유지되고 있다. 시장마다 특색이 있는데 남구로역에는 잡부와 기능공들이 한데 모이고 신정동과 면목동에는 목수 등의 기능공들만 모이는 편이다.
과거 1970년대 경제 성장 붐이 일었을 때는 인력시장이 자생적으로 생겨나 서울에만 수십여개에 달했지만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근래 들어 휴대전화 등 연락수단의 발달과 함께 유료직업소개소가 등장하면서 명맥이 끊기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옛날에 드라마같은 걸 보면 ‘인력시장에서 목수 하실분 다섯명’ 그렇게 외치면 ‘저요’ 하고 차 타고 가잖아요. 그게 전통적인 인력시장이었다면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핸드폰이나 유료 직업소개소가 생기면서 하루 전에 미리 인력 세팅이 이뤄져서 움직이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처럼 즉석해서 일자리를 찾는 곳이 아니예요.”
“지금 인력시장은 현장에 나가는 팀원들끼리 모여서 이동하는 일종의 ‘만남의 광장’ 같으로 생각하면 되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그런것도 모르고 무작정 인력시장에 나와서 일감을 구하려고 하면 허탕칠 일이 많을껄요.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팀반장급들도 일 잘하는 자기네 팀원만 데리고 다니려고 하지 검증되지 않은 사람 잘 안쓰려고 하니까...물론 팀반장급 중 아는 인맥이 있으면 모를까. 현장에 첫 발을 떼려면 유료직업소에서 등록을 하고 수수료 얼마를 주고 일감을 찾는게 빠를 꺼예요”라며 현 인력시장 실정을 알려줬다.
실제 이날 구직자들이 자리를 뜨는 모습은 비슷했다. 유료직업소개소에서 나온 듯한 말끔한 차림의 한 남자가 종이를 들고 누군가 호명을 하고 한 차례 인원체크가 끝나자 무리는 골목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에 올라탔다. 둘셋씩 짝을 짓고 있던 무리들도 짐작건대 반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와서 손짓을 하자 인사를 하며 함께 이동했다.
남구로역 교차로 양 옆길 곳곳에는 건설노동자들을 싣고 떠날 채비의 승합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승합차가 떠나면서 순식간에 십여명의 무리들이 사라졌다.
일대에서 교통지도를 하던 경찰이 있어 취재중인 기자임을 밝히고 물었다. “새벽에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거 같은데 몇 명이나 모이는 건가요? 또 남아 있는 사람은 언제까지 있어요?”
경찰이 말했다. “새벽 4시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는데 한 600~700명 정도 되요. 이후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아침 6시가 되면 100여명 정도로 확 줄어드는데 남아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일감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고 봐야죠.”
어느덧 시각이 오전 6시를 가리킬 무렵 경찰 말대로 구직자들이 절반 넘게 확 줄어들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이들은 초초한 듯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이곳 남구로역에만 인력사무소가 십여곳에 달하는데 사무소 입구주변에 죽치고 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막연히 무언갈 기다리는 듯 보였다.
이날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를 취재하기 위해 나온 나 역시 허탕 칠 것 같았다. 사전에 유로직업소개소에 등록하지 않아 즉석해서 구직을 해야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1시간 넘게 주변을 맴돌았지만 누군가 선뜻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과거처럼 무작위로 인력을 뽑아가던 구인은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구직을 못할 것 같았다.
안되겠다 싶어 마침 인력 사무소 앞 종이를 들고 있던 남자가 보여 말을 건넸다. “현장 처음나왔는데요. 일 좀 해보려고 하는데 자리 좀 있을까요?” 그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살펴본다.
“나이가 어떻게 되요?” “36입니다.” “안전교육은 받았어요?” “네 받았어요” “그럼 간단히 지하에서 작업하는 일인데 덥지도 않고 괜찮을꺼예요. 하시겠어요?”
운이 좋았다. 사전에 사무소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일감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하던데 난 다행히 구직에 성공했다. 요즘 인력시장에는 젊은 사람이 드물다고 했었는데 상대적으로 득을 본 듯 했다.
사무소 직원이 현장이 적힌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서울안에 있는 현장이라 혼자 지하철 타고 갔다오면 될꺼예요” “원래 가기 전에 등록하고 가야 하는데 늦었으니 일단 다녀오고, 갔다와서 오후에 사무실 들려서 등록하고 일당 받아가세요.”
“4시간 짜리 안전교육은 받으셨어요? 그거 받아야만 현장에 나갈 수 있어요.”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기전 건설업 일용직 근로현장 취재는 인력사무소 직원과의 통화에서 시작됐다. “건설현장 일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처음 현장에 나가는 거라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서요.”
사무직원이 말했다. “현장 처음 나와보시는 건가요? 그럼 안전교육은 받으셨어요? 그거 안 받으셨으면 일 못해요. 교육 받으면 이수증이 나오거든요. 그거 들고 일단 사무실로 나오세요.”
취재를 하기 전까지는 건설현장 일용직은 무작정 새벽인력시장에 나가거나 인력사무소에 찾아가면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 2014년 12월부터 모든 건설현장의 인부들이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게 바뀌어져 있었다. 이 교육을 받지 않은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사업주는 인부 1인당 5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실제 모든 현장에서 교육을 받은 근로자만 고용하는지 다시 물었다. “정말 하루만 일할 생각인데 그냥 교육 안받아도 간단한 작업 현장에 갈 수는 없을까요?” “집안 내부 간단하게 인테리어 하는 작업에 도우미식으로 가는 거면 모를까 일반 현장에는 안돼요. 안 받고 오면 괜히 문제 생겨요.”
다시 질문했다. “그럼 교육비는 무료인가요?” “보통 사업주가 내게 되어있지만 일용직으로 현장 들어가시면 본인이 부담하셔야 될 꺼에요.”
안전 교육비 4만원…법령에는 사업주 부담이지만 현실은 근로자 부담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은 건설현장마다 근로자를 채용할 때마다 발생하는 ‘반복-낭비적’ 요소를 줄이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실시되고 있었다. 교육비는 정부가 공인한 기관이 자율로 정하게 돼 있어 지역별로 대략 3만원에서 4만5000원 정도 된다. 서울의 경우 4만원 정도 됐다.
다만 교육 취지상 사업주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었지만 실제 사정은 달랐다. 일용직 근로에 나선 이가 직접 교육비를 내야 했으며, 향후 건설현장 측에 사후 청구도 되지 않았다.
안전보건공단 한 관계자는 “초창기에는 사업주가 교육비를 부담했었는데 이후 교육받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업주가 교육받은 사람만 고용하는 실정”이라면서 “그러다 보니 근로자가 자기 돈을 내서 받는 경우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제2항 제3호)에는 교육비를 사업주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허울뿐인 법령이었다. 관련기관은 제도 개선 의지가 없는지 안전교육비용을 누가 부담하는 지에 대한 현황 파악 자료도 없었다. 다만 사업주가 교육비를 낼 경우 상대적으로 여러명 분을 한꺼번에 내기에 개인 부담과 사업주 부담이 각각 절반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날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서 서울의 한 교육기관을 검색해 오후 교육일정에 참석했다. 교육은 총 4시간으로 진행됐다. 총 두명의 강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주요 내용을 비롯해 작업별 위험요인과 안전작업 방법, 건설 직종별 건강장해 위험요인과 건강관리 등에 대해 강의했다.
교육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에 대해 강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특별한 테스트 없이 4시간의 청강 교육이 끝나자 명함 크기의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이 나왔다.
교육을 마치고 나오던 길 함께 한 남성에게 취재중인 기자임을 밝히고 물었다. “교육 처음이실텐데 많은 도움 되셨어요?” 그는 “교육이 있어야 사고가 덜 나는건 맞는데, 이게 4만원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몇 천원도 안하는 책자에 사진 몇장 보면서 교육하는게 전부인데 이걸 4만원이나 받아먹는게 사실상 기관들 돈 타먹기 위한 것 아니냐”고 타박하는 말투로 답했다.
존중받지 않는 노동환경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18일 새벽, 인력시장에서 유료직업소개를 통해 현장을 지정 받고 홀로 이동하는 길. 머릿속에 온갖 걱정이 스쳤다. ‘작업장이 지하라고 하던데 혹시 붕괴되는 그런 사고는 생기지 않을까?’ ‘전선을 설치하다가 혹시라도 감전 사고는 있지 않을까?’ ‘만약 사고라도 나면 제대로 산재보험은 받을 수 있을까?’
몇 달전 수도권에서 났던 한 건설현장 붕괴사고가 떠오른다. 비계가 무너지면서 그안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들도 모두 아침 현장으로 나서는 길의 마음이 이랬을까.
모든 근로자가 목숨을 담보로 고의적으로 부주의하게 작업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사고는 늘 예측하지 못한 공간과 시간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이에 노동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근로환경이 지켜져야 하지만 현장에 대한 못미더운 시선이 컸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5년도 산업재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산업재해자 수는 9만129명에 달한다. 이중 건설업 재해자 수는 2만5132명으로 27.9%를 차지했다. 특히 전체 산업 재해 사고 사망자는 992명으로 이중 건설업은 437명(45.8%)에 달한다. 연간 500여명이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매일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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