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로 뒤덮인 국회, 예산안은 또 졸속으로?
예결위 정책질의 이틀째, 온통 '최순실' 예산안은 뒷전
"국회 중요 임무는 권력 감시만이 아니라 예산 심의"
정쟁만이 가득했던 국정감사가 끝나면서 이젠 좀 잠잠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예산안 심사가 급해졌지만 국회는 온통 최순실 문제로 도배가 돼 있는 상황이다. 자연스레 예산안 졸속심사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지난 26일 국회에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가 열렸다. 본격적으로 2017년도 예산안 심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예결위에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이 출석했다.
당초 예결위에서는 법인세 인상과 누리과정(3~5살 무상보육) 예산 중앙정부 부담 등을 놓고 여야 간 논란이 예상됐으나 예산안 심의는 손도 못 대고 끝났다. 여야는 이구동성으로 정부와 청와대를 향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철저한 진상 규명과 인적 쇄신을 요구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선실세가 대기업 손목을 비틀어 돈을 뜯고 국가기밀을 보고받는 동안 총리와 비서실장은 뭘 했느냐"고 질타했고 같은당 박홍근 의원은 "사태를 수습하려면 총리를 포함한 내각 총사퇴가 불가피하다"고 공세를 펼쳤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가 탄핵, 박근혜 하야, 최순실, 최태민 등이다. 이게 민심이다. 대통령에게 전하라"고 주장했다.
이는 여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하태경 의원은 "최순실 문제는 고려를 멸망케 한 신돈(공민왕에게 발탁돼 권력을 행사한 승려)과 같은 사건이다. 국무위원과 비서진은 대통령에게 '모든 진실을 고백하지 않으면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말하라"고 압박했고 권석창 의원은 "새누리당의 지지가 이탈하는 과정을 눈 앞에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의 사퇴 요구에 황교안 국무총리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답했고, 이원종 비서실장은 "깊게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또 박근혜 정권 출범 시기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활동한 유일호 경제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이 "최순실이란 이름이나 비선 조직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증언했다. 유 부총리와 조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각각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지냈다. 이 실장도 "(최 씨의) 이름은 언론을 통해 전해들었지만 그저 평범한 주부로만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예결위장에서 '최순실' 외에 다른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종합정책질의 첫 날임에도 예산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없었다. 오제세 더민주 의원은 "내년 400조원 예산을 심의해야 하는 첫날 국회 예결위원들과 정부가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27일엔 이틀째 종합정책질의가 열렸지만 이 역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분노의 성토장이 됐다. 여당에서는 국정 운영 정상화를 위해 최순실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야당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부를 질타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는 회의 시작도 전에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입었던 옷 값의 지불이 공금인지, 대통령의 사비인지, 최 씨 돈으로 지불한 것인지에 대해 구분해서 자료를 제출해 달라"며 "최 씨에게 기밀 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문건이 유출되는 경로와 경위를 파악해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야당의 공세가 본격화했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최순실 사태로 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이미 핵심 인물들이 해외로 도피·잠적하고 증거인멸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최 씨 소재파악을 촉구했다. 같은당 이개호 의원도 "우리나라 외교관, 정부기관, 여러 공무원들은 뭐하는거냐. 전혀 최 씨에 대한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 씨가 관계자들과 상당한 내통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더민주 소속 김현미 예결위원장은 "세계일보에서 최순실씨를 만나 인터뷰까지 했는데..."라며 "검사님들은 기자들 뒤만 따라다녀도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꼬았다.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비서실 내부 감사를 통해 자체 조사를 신속하게 하고 진상을 바로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거들었다.
그러자 황 총리는 "(최 씨가) 외국에 있으면 사법당국과 사법공조를 통해 신병확보를 하고 인계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법공조를 받으려면 사전 절차들이 있는데 검찰도 법무부 지시에 따라 철저히 하기 위한 조치들을 신속히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실장은 "검찰에서 수사를 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가장 정확하고 가장 확실히 밝혀질 수 있는 분위기 만들어 가는 데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예결위 회의라기보다는 정부와 청와대를 상대로 한 청문회 느낌에 가까운 발언들이었다.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이 문제는 특검에 맡겨 수사토록해야 한다. 경기도에서 누리과정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누리과정 예산에 관한 질의를 이어갔지만 그 반향은 크지 않았다.
이번에도 졸속 심사? "지금은 예산심의에 집중할 때"
당초 이번 예산 심사에서는 예산 부수법안과 교육 및 복지 예산의 규모와 사용처 등 예산안 내용을 두고 여야 간 공방이 예상됐었다. 새누리당은 정부가 제출한 부수법안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만 야당 측은 각각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의 증세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고 부수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간에 입장 차가 분명해 하루속히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정국은 '최순실 게이트'에 휩싸여 있다. 27일 오후 3당 수석들이 모여 논의를 했지만 그 주제는 예산안 관련이 아닌 '최순실 특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협상이 결렬돼 추후 재논의키로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데일리안'에 "이번 최순실 사건이 며칠 반짝하고 말 사안은 아니다. 특검이 시작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특검 이후에는 더 큰 건들이 터져 예산안 논의는 뒤로 밀리거나 법정 시한에 맞춰 하려다 보면 졸속 심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국회가 여러 기능이 있다. 정부 권력을 감시하는 것도 기능도 있지만 예산에 관한 업무도 국회만이 할 수 있는 고유 기능"이라며 "최순실은 최순실대로 중히 다뤄야겠지만 예산에 관한 것도 결코 소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도 "우리나라는 하나의 큰 이슈가 터지면 전부 매몰되는 집단사고 현상이 벌어진다. 만약 그 사고가 오류가 생겼을 경우엔 엄청난 국가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며 "어떤 문제가 생기면 침착하고 신중하게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은 예산안 심의를 할 시기이니만큼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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