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부친의 엄한 딸 교육과 최순실의 눈먼 딸 사랑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빗나간 자식사랑 망한 금수저들
야바위로 대통령의 눈과 귀 덮은 사이비 영성 교주 일가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그의 부친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혁명가였던 시중쉰(習仲勳)에게는 여럿 자녀가 있다. 결혼 전에 세 명의 아이를 두었다는 소문이 있고, 정식으로 결혼한 치신(齊心, 1926년생-생존)과의 사이에 2녀2남을 두었다.
치신과의 첫 번째 딸은 1949년 연안의 교아구(橋兒溝)에서 태어났다하여 ‘차오차오(橋橋)’라고 지었다. 둘째 딸은 서안에서 태어났다하여 ‘안안(安安)’이라 지었다. 다음으로 아들은 북경(예전엔 北平이라고 불렀음) 근처에서 태어났다하여 ‘진핑(近平)’이라 하고, 작은 아들은 북경에서 먼 곳에서 태어났다 하여 ‘위안핑(遠平)’이라 지었다.
시중쉰 서기는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절대 버릇없이 키우진 않았다. 그는 공무가 없는 날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거나 거리구경에 나섰는데 언제나 돈을 지니고 다니지 않았다. 장난감을 사지 못한 아이들이 토라지면 그는 참을성 있게 아이들을 달래기만 할뿐, 절대 다른 사람들이 대신 사주거나 선물을 주는 등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그는 서점을 돌아볼 때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사서 주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마치 책에 굶주린 아이처럼 손에서 책을 놓을 줄 몰랐다고 한다.
아이들 옷과 신발, 양말은 차례대로 릴레이 하듯 이어졌다. 큰 애가 입다 낡은 옷은 기워서 다시 어린 애가 입었다. 차오차오가 입었던 옷과 양말, 신발이 남동생인 진핑과 위안핑에게까지 이어졌다. 누나의 꽃무늬 천 신발을 받아 신어야했던 진핑이 친구들이 놀리지나 않을까 싶어 신으려 하지 않자 시중쉰은 먹물로 꽃무늬 신발을 까맣게 칠해줬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이며 검약하는 습관을 키워주기 위해 아이들 네 명은 팔일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에 한 번 집에 돌아왔다.
시진핑과 시위안핑, 그리고 시중쉰
헌데 두 딸의 이름이 분명 ‘시차오차오’ ‘시안안’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치차오차오’ ‘치안안’이다. 시중쉰 서기는 아이들을 특별한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딸인 차오차오는 초등학교 졸업 후 하북의 북경중학에 합격했다. 학교가 집에서 한 정거장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딸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시중쉰 서기는 차오차오를 계속 학교에 기숙하며 친구들과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도록 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했다. 학교의 숙식 환경은 지극히 열악했다. 학교 식당 밥은 잡곡이 70%였다.
당시 시중쉰 서기는 국무원 부총리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름이 항상 신문에 오르락거렸다. ‘시’ 성이 드물었기에 사람들은 부총리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연상을 하기가 쉬웠다. 시중쉰 서기는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딸의 신분을 파악하지나 않을까 딸에게 엄마 성을 붙여주고, 가정 성분 역시 ‘혁명간부’에서 ‘직원’으로 바꿨다. 이렇게 지어진 ‘치차오차오(齊橋橋)’라는 이름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둘째 딸도 ‘치안안(齊安安)’이다.
빗나간 자식사랑에 인생 망가진 금수저들
한국인의 자식사랑은 유별나다 못해 거의 맹목적이다. 하여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무척 공을 들인다. 아이의 사주를 보고 좋은 이름지어주는 철학관을 찾는 부모들도 꽤 많다. 이름을 예쁘게 지으려 며칠 씩 고민도 한다. 이처럼 이름에다 부모의 바램(실은 욕심)을 잔뜩 바른다. 이름만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아이들은 대부분 금수저라 하겠다. 그렇지만 우리네 옛 어른들은 귀한 자식일수록 ‘개똥이’ ‘쇠똥이’식으로 천한 아호를 붙여주어 지나침을 경계했었다.
아무렴 그 이름대로 훌륭하게 커주기만 한다면야 그깟 극성쯤이야 뭔 대수겠는가?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의 성공한 정치인 내지는 기업인들이 귀엽게 키운 자식들로 인해 말 그대로 개망신 당하는 일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도 온갖 불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유교적 관습에선 천륜은 죽어도 끊을 수 없으니, 살아서건 죽어서건 자식의 추태는 고스란히 부모의 책임이 된다.
자식들 때문에 재임 중에 망신당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지어준 이름만큼 현명하지도 넉넉하지도 못했다. “너, 내려!” 땅콩회항시킨 딸 덕에 망신 톡톡히 당한 항공사 오너 회장. … 이 작은 나라가 도무지 심심치 않은 데에는 이 ‘귀하디 귀한’ 금수저들의 공이 적지 않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당선을 눈앞에 둔 아버지의 부도덕함을 만천하에 고발해서 기어이 낙마시킨 어느 정치인의 버림받은 딸도 있었다.
야바위가 판치는 영성공화국
박근혜 대통령은 1979년 청와대에서 나온 이래 정계에 입문할 때까지 상당기간을 최태민에게 정신적인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비 영성사업계의 생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대어’를 어떻게 길들이고 가지고 놀았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것이다. 속아서든 원해서든 일단 삼킨 낚시바늘은 줄이 끊어져도 뱉을 수가 없음을 잘 알 것이다. 문제는 세간에 알려진 최태민의 행적과 평가가 도무지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는 점이다. 하여 정치적인 고비 때마다 주머니 송곳처럼 불거져 나와 정치인 박근혜를 난감하게 만들었지만 국민들은 그깟 개인사를 굳이 정치와 연관지으려 하지 않았다.
설마 하는 의구심을 누르고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미련, 부채를 갚는 셈치고 그를 지지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헌데 결국 그 핏줄보다 질긴 인연의 고리 때문에 최순실이라는 오명까지 끼얹고 말았다. 그에겐 피를 나눈 형제보다 최씨 일가가 더 소중했던 모양이다. 최씨 일가의 입장에선 자기네들이야말로 진정한 패밀리이자 킹메이커라고 생각했을 것이니 당연히 그만한 보상을 누리고 싶었겠다.
그들의 저속성은 돈이나 권력과 언제나 한통속을 이룬다. 타고나지 못한 우아함·계급·존경을 명품 사듯 갖고 싶은 유혹에 쉬이 빠져든다는 말이다. 그간에 최순실 모녀가 저지른 막장 갑질이 하나씩 하나씩 양파처럼 까발려지고 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더니,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대통령의 연설문까지 미리 받아보고 수정하는 등 국사 전반에 닥치는 대로 간여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으니 최씨를 가히 ‘갑질의 왕’이라 부를 만하겠다.
고작 이게 이 민족의 한계란 말인가?
세상에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돈 자체인 사람들이 있으며, 명문 혈통의 후예들이 있는가 하면 교육과 교양, 매너와 품격이 언제나 결핍된 옹색한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졸부가 꽤 큰 희생을 치르고 배우는 것은, 부자라고 해서 기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상류층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성공한 개인, 그것이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상류층으로 인정을 받고자 안달한다.
왜 최씨는 딸의 승마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자신들의 출신에 베일을 씌우기 위해 결코 되지 못할 상류층의 취미라도 모방코자 한 것이겠다. 교양과 세월이 주는 귀족스런 기품을 딸을 통해 획득코자 한 것이겠다. 열등한 자에서 우월한 자의 지위로 급상승할 때 저지르는 서투름이겠다. 상류층과 특권층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한 무지에서겠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맙소사! 그 분에 넘치는 막강한 금력과 권력으로 더없이 귀한 제 자식에게 가르친다는 게 고작 갑질이라니!
국민들 가슴에 '세월호' 때부터 쌓이고 쌓인 억장이 한꺼번에 다 터져 나왔다. 그렇다한들 최씨 일가와 박 대통령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아직 빙산의 일각밖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다들 도피한 후에야 박 대통령이 “누구라도 재단 관련 불법을 저질렀다면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에 자신이 찔리고 말았다. 음모론 따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없던 일을 꾸며낸 것도 아니니 말이다. 사태의 심각성이야 대통령 자신과 그 측근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덮는다고 한들 지워질 일도 아니다.
갑질공화국, 도깨비나라! 허깨비나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대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만사형통’ 형님 때문에 망신을 당하더니 박 대통령은 그 이름만큼 ‘순실(順實?)’하지 못한 ‘패밀리’ 때문에 망신살 다 뻗혔다. 결국 이번 사건도 유병언 도피 사건이나 ‘찌라시’ 사건처럼 국민들 진 다 빼놓고 흐지부지 하고 말 것인가? 제발이지 꼭꼭 숨어서 다시는 나타나지 말기를? 야당도 내년 대선까지 최대한 질질 끌고 싶을 테니 탄핵보다는 이런 숨바꼭질을 더 즐길 것이다.
위에서는 갑질, 아래에서는 떼쓰기! 조선이 망할 때가 이랬을 것 같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아무렴 용이 개천에서 놀면 새우의 조롱을 받고, 호랑이도 평지에 가면 개에게 속는다지만 해도 너무 했다. 야바위 교주? 십상시? 누님? 언니? 동생? 국사가 소꿉놀음이던가? 더 이상 부끄러울 수는 없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꿨다고 제국이 되던가? 인성교육진흥법 만들었다고 인성이 바뀌던가?
헌법 개정한다고 나라꼴이 바뀔까? 이참에 아예 국호까지 바꿔버릴까?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가 바로 선다면야 4년마다 간판을 못 바꿔 달까? 다 무능 무책임을 가리기 위한 핑계다. 청탁금지법인 ‘김영란법’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갑질에는 별무소용이다. 아무래도 개헌에 앞서 갑질금지법으로 ‘최순실법’부터 제정해야 할 듯하다.
한국인에게 정치란 갑질이다
역사의 관성이란 게 이래서 무섭다. 천하의 알뜰한 인재들을 다 마다하고 어쩌면 그렇게 지지리도 못난 머슴들만 끌어다 모았을까? 허나 사물은 반드시 스스로 먼저 썩고 난 후에야 벌레가 생기는 법. 문제는 언제나 사람, 그 중에서도 지도자, 최고지도자의 ‘태도적 가치’다. 일찍이 루소가 말한 것처럼 ‘세상의 기준에 따른 진실’과 ‘자신의 기준에 따른 성실성’을 구분도 못하고 ‘거짓된 가치’를 쫓는 ‘이름값’도 ‘자리값’도 못하는 저급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다 한들 이다음엔 또 어떤 도깨비가 나올까 걱정이 앞선다. 문민정부 탄생 이래 줄곧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후임 대통령이 결정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시 구관이 명관이면? 대한민국은 진짜 끝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눈을 씻고 봐도 다음 ‘깜’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사퇴도 탄핵도 차마 입 밖에 내뱉질 못하는 것이겠다. 진흙으로 만든 개는 밤을 지킬 수 없고, 기와로 만든 닭은 아침을 담당할 수 없다고 했다. 축구감독처럼 대통령을 밖에서 모셔 오면 이 질긴 된장독 근성을 끊어낼 수 있으려나?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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