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법인세 낮춘다는데…우리는 증세 논의?
<법인세 인상이 답인가①> "투자 고용 없이 유보금만 늘렸다" 과연 진실일까
"투자 고용 없이 유보금만 늘렸다" 과연 진실일까"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법인세 감세와 보호무역주의 공약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며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온 국민의 시선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쏠려있는 사이 최근 또다른 정치권에서 법인세 증세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정부의 든든한 지원날개를 달고 있는 상황인 반면 우리 기업들은 최순실 사건으로 인해 '식물경영'상태에 빠진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우리 정치권이 스스로 기업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경쟁하라며 글로벌 시장으로 내모는 꼴이다. 낙수효과 미미, 유보금 확대, 부자감세 등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쪽이 내세운 논리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짚어본다.<편집자 주>
"기껏 법인세를 낮춰 세 부담을 줄여줬더니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은 안 늘리고 사내유보금만 늘리고 있다."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며 내세우는 논리다. 차라리 법인세를 더 걷어 정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고 복지재원을 충당하자는 것이다.
기업들로부터 돈을 더 걷어 복지재원을 충당하자는 논리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솔깃한 얘기다. 나가는 것 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그래서인지 여론도 법인세 인상 찬성 쪽으로 쏠리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법인세 인상 찬성측 논리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인세는 낮췄으나 세 부담은 줄지 않았고, 투자와 고용은 꾸준히 늘었으며, 정부 재정건전성은 법인세율 조정과 무관하고, 법인세를 인상해도 복지재원을 충당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인세 낮춰 기업 세 부담 줄었다?
우선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3%포인트 인하한 조치로 기업들이 어느 정도 이익을 챙겼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립대 김우철 교수가 최근 발표한 ‘최근의 법인세 인상 조치와 합산 세수효과’에 따르면, 이번 정부 들어 실시된 법인세와 지방세 관련 주요 14개 세법개정에 따라 올해만 5조원에 가까운 증세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구체적으로는 ‘법인지방소득세 세액공제·감면 정비’로 9800억원, ‘최저한세율 인상’으로 7745억원,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축소’로 6479억원, ‘기업소득환류세제 도입’으로 5961억원, ‘외국납부세액공제 축소’로 4270억원의 증세효과가 각각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산업단지 내 취득세 및 재산세 감면 정비(3176억원), 에너지절약시설투자세액공제 축소(1500억원), 연구인력개발설비투자 세액공제 축소(1400억원) 등을 더하면 총 4조7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분석한 법인세 3%포인트 인하에 따른 기업들의 감세 효과는 2010년 이후 2014년까지 연평균 2조6000억원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각종 비과세 감면 축소·정비 등을 통해 법인세 인하에 따른 감세 효과의 두 배의 달하는 금액을 추가로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투자와 고용 안 늘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평택 고덕 구제화계획지구에 역대 최대 반도체 생산라인 착공에 들어갔다. 여기에 투자되는 금액은 15조6000억원에 달한다.
SK그룹은 그해 8월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 10년간 46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18년까지 친환경 및 스마트차량 개발에 13조3000억원, LG그룹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액정표시장치(LCD) 등 디스플레이 부문 시설확장을 위해 2018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굵직한 투자 계획 발표가 잇따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30대그룹의 투자는 법인세 인하 직전인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5.2%의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고용 역시 마찬가지다. 30대그룹의 종업원 수는 2008년 79만6000명에서 지난해 1136명으로 42.7% 늘었다. 이 기간 연평균 증가율은 5.2%에 달한다.
같은 기간 30대그룹의 총 인건비는 20조8410억원에서 35조480억원으로 68.2%나 뛰었다. 연평균 증가율 역시 7.7%를 기록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줄곧 경기가 좋지 않았지만 기업들은 꾸준히 투자와 고용을 늘렸다”면서 “법인세 인하 혜택만 누리고 투자, 고용은 소홀했다는 얘기가 무슨 근거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내유보금만 쌓았다?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치가 기업의 사내유보금 추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1700여개사의 사내유보금 총계는 2011년 637조원에서 2012년 679조원, 2013년 723조원, 2014년 770조원, 지난해 832조원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은 대기업 금고에 쌓아놓은 현금이 아니라 유보금의 80% 이상이 설비·재고 등의 다양한 형태로 투자된 자산이라는 게 재계 논리다.
지난해 기준 832조원의 사내유보금 중 현금 자산이나 단기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155조원으로 18.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임직원 급여와 원자재, 협력사대금 결제 등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필수적인 비용으로 사용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일 ‘법인세 인상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금융위기 이후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현금성 자산 비율을 높이는 게 국제적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애플 1개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160억달러(약 257조원)로 우리나라 상장기업 전체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100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소프트(1026억달러), 구글(731억달러), 시스코(604억달러), 오라클(525억달러) 등도 거액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법인세 더 걷어 재정건전성 강화, 복지재원 확충?
법인세를 인상해 추가 확보되는 세원으로 국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고 복지재원도 확충하자는 논리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게 재계 입장이다.
재계는 세수 부족의 원인은 법인세 인하가 아닌 글로벌 경기침체의 결과로, 세계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확장적 재정운용으로 국가채무비율이 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복지재원 확보 역시 법인세 인상에 따른 세수 증가와는 격차가 크다.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은 과세표준 500억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3%포인트 인상하는 내용으로,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개엊안 통과시 세수 증가 규모는 2018년 3조1000억원, 2021년 3조6000억원으로 3조원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초연금제도를 현재 수준으로만 유지해도 2040년에는 100조원이 소요되며 지난 총선에서 정치권이 제시한 주요 복지 공약 실현에도 22조7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자본유출, 투자·고용위축 등 부작용 더 커
재계와 학계에서는 법인세를 인상한다면 기업환경 악화에 따른 자본유출과 투자 및 고용위축으로 이어지는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법인세가 3%포인트 인상되면 자본유출은 6.75% 증가하고 유입은 4.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이를 2015년 FDI(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에 적용하면 유출은 21조3000억원 증가하고 유입은 8조1000억원 줄어 순유출이 29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전경련은 “법인세 인상은 경제 활황기에는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최근과 같은 경제 불황기에 법인세를 인상하면 투자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매출 하락 및 인건비 급증 등 기업의 기존 부담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은 기업의 고용창출 능력을 억제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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