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코 사태] 구조적 불신과 배타적 농구 문화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7.04.13 11:43  수정

[이슈] 농구계 자성의 계기 되어야

‘누구를 위한 프로농구인가?’

한해를 결산하는 축제의 무대가 되어야할 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외국인 선수들의 거친 매너와 돌출행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테크니컬 파울과 퇴장, 거친 욕설과 고성이 오고가더니 급기야 외국인 선수가 상대 선수와 심판까지 폭행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퍼비스 파스코(27‧창원 LG)는 12일 KTF와의 4강 3차전에서 자신을 거칠게 수비하던 장영재를 밀친 것도 모자라, 퇴장을 명령한 심판에게 까지 손을 댔다. 이 같은 행동에 동료선수들이 급히 뜯어 말렸지만 파스코는 경기장을 나갈 때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경기 후 네티즌들은 파스코 동영상을 다시 보며 한국 농구판에 대한 거센 비판을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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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고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이 모든 사태를 단순히 일부 외국인 선수의 추태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계속 되풀이되어온 문제점에 대한 자각과 시정의 노력에 소홀했던 한국농구의 구조적인 문제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


솜방망이 징계, 불씨를 키운 KBL

올해 정규시즌에도 프로농구는 여러 차례 외국인 선수들의 거친 매너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번 폭력사태의 장본인인 퍼비스 파스코만 하더라도 정규시즌에 이미 심판에 대한 폭언으로 인한 퇴장, 동료 외국인 선수 키마니 프렌드(전자랜드)와의 난투극으로 도마에 오른바 있다.

파스코 외에도 단테 존스(KT&G)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필립 리치(KTF)와의 멱살잡이에 이어, 농구공을 발로 걷어차는 돌출행동으로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애런 맥기(KTF) 역시 지난 플레이오프 4강 1차전에서 분을 누르지 못하고 심판을 밀치는 행동으로 역시 퇴장 당했다.

일찍부터 외국인 선수들의 돌출행동이 여러 차례 도마에 오른바 있었지만, KBL은 그동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시정하기보다는 각 구단의 눈치만 보면서 조용히 수습하려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각 팀마다 절대적인 비중을 지니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엄격한 징계를 적용하지 못한 KBL과 각 구단의 줏대 없는 행정이 외국인 선수들을 ‘통제 불능’ 사태가 몰고 간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인은 용병? 선수 보호 의식 없는 KBL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일벌백계만이 과연 정답이냐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공통된 불만은 국내 선수들의 거친 수비로 인한 위협과 파울을 제때 불어주지 않는 심판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고 있다. 서열주의가 강하고 학연, 지연 등으로 묶여 있는 국내 농구계에서는 타 팀이라 할지라도 잠재적인 동료의식이 있어, 선수들 간 거친 파울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외국인 선수를 흔히 용병(傭兵)이라고 부른다. 팀의 일원이나 동료 선수라기보다는 은연중에 ‘고용된 병사’ 혹은 ‘이방인’으로 대하는 배타적 의식의 산물이다. 특히 야구나 축구에 비해, 국내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자연히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수비는 한층 격렬해질 수밖에 없으며, 국내 선수들은 종종 상대를 자극하는 거친 파울성 수비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국적을 막론하고 선수들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는 심판마저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 대다수 심판들은 외국인 선수들의 항의에 대해 처음부터 무시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피해 의식 속에 외국인 선수들은 위협적인 파울일수록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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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제도, 국내 농구 문화 재점검 기회로 삼아야

파스코 같은 사례는 예전에도 찾을 수 있었다. 프로농구 초창기에 활약했던 제이슨 윌리포드(전 나래-기아)는 “한국 심판들은 수준이하”라고 격렬하게 비난하여 다시는 한국무대에서 뛰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2000-01시즌 뛰었던 재키 존스는(SK)는 상대의 거친 수비를 제대로 불어주지 않는 심판에 대해 항의의 뜻으로 상대 선수를 구타하는 제스쳐(이때 LG의 대릴 프루는 존스의 동작만 컸을 뿐 실제로는 가격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를 취하다 퇴장당하며 6경기 출전정지의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현재 국내 농구에서 비교적 장수용병으로 꼽히는 찰스 민렌드(LG)나 애런 맥기(KTF), 단테 존스(KT&G)등도 여러 차례 한국 선수들의 거친 수비와 심판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낯선 타지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선수들은 그들이 설사 돈 때문에 찾아온 용병들이라 할지라도 한국무대를 밟은 이상, 마땅히 보호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우리의 선수들’이다.

이번 폭력사태는 단순히 외국인 선수들만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가시적인 일벌백계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배타적인 한국농구문화와 외국인 선수제도에 대한 자성의 계기가 되어야할 것.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비신사적인 파울, 외국인 선수에 대한 차별적인 심판판정에 대한 시정이 없다면, 제2, 제3의 파스코 사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음을 있어서는 잊어서는 안 된다.


☞ 역대 최악 ‘파스코 폭력사태’…어떻게 봐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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