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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블랙리스트'에서 배워야할 것


입력 2017.07.29 07:47 수정 2017.10.16 10: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권력의 독점이 낳은 참사…권력자 눈치만

우파진영도 끌어안고 시장의 실패 국가가 보정해야

소위 ‘블랙리스트’사건의 1심재판 판결에서 김기춘 전 실장은 징역 3년, 조윤선 전 장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마침내 소위 ‘블랙리스트’사건의 1심재판 판결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혐의에 대한 재판이다. ‘국정논단사건’ 재판의 첫 테이프다. 정유라 이대입학비리에 대한 선고는 있었지만, 권력의 핵심에 대한 첫 판결인 것이다.

기춘대원군이라고 불렸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김기춘 전 실장은 징역 3년, 조윤선 전 장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대부분이 검참 기소내용 중 일부혐의만 인정이 됐다. 조윤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무죄가 나왔다. 국회에서의 위증죄가 유죄로 인정돼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어떤 분은 형량이 너무 작다는 불만이 있을 것이고, 일부는 지나친 인용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나는 일단 정치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정책적 수단의 위법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는 이게 죄가 되느냐, 아느냐가 논란거리였다. 김기춘 전 실장이 주장했듯이 ‘지적 시장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다음은 그 수단이 정책적 재량의 범위에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많은 학자가 지적했듯이 국가권력은 ‘하드파워(Hard Power)’와 ‘소프트파워(Soft Power)’로 이루어 져 있다. 하드파워는 형식적, 물리적 권력이다. 권력의 점유여부는 선거에 의해 결정된다. 선거과정에는 국가의 인위적인 개입이 가능하고 양적인 균형도 이루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소프트파워’다. 권력형성과 행사과정 전반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와 같이 공식적으로 개입해 균형을 맞출 방법이 없다. 불균형의 결과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우리나라의 헌법적 가치에 위해가 될 수 있다. 하드파워보다 더 결정적인 위험이다. 소프트파워는 보이지 않는 헤게모니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다. 사상적 위기가 현실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국가인 것이다.

문화콘텐트사업은 좌파적으로 접근해야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도 균형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 포퓰리즘의 유횩에 빠지는 정치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나름 안전장치들이 있다.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다. 그러나 기업이나 시장의 질주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이윤이 전부이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의 부담감이 행태에 영향을 끼치기 힘들다.

서점만 가 봐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보면 대부분 좌파에 치우친 작가들의 책이 올라가 있다. 우파 성향 콘텐트는 ‘가뭄에 콩나듯’이 아주 드물게 보인다. 많은 사람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며 좌우의 균형을 중시한다. 그러나 시장은 불균형으로 치닫는다. 그동안 좌파진영은 ‘문화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콘텐트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장악해 왔다. 대기업은 이에 편승해 쉽게 돈을 벌었다. 이게 과연 정상일까? 개별적인 콘텐트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런 구조가 정상적이냐’는 문제 제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블랙 리스트’와 ‘화이트 리스트’로 해법을 찾은 것 같다. 정부는 문화지원예산과 각종 기금으로 문화콘텐츠 시장에 개입을 한다. 공식적인 목적은 ‘진흥’이고 ‘창달’이다. 정부의 재원은 한정되어 있다. 지원기준도 기득권에 유리하다. 기득권은 좌파에 편중되어 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뭔가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담당공무원 교체와 리스트 하달이다. 블랙리스트는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고, 화이트리스트는 ‘지원하라’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디선가 자원을 빼야 하기 때문에 블랙리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는 개입할 수 있고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큰 국가론’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요즘 재벌을 떨게 하는 ‘공정거래위원회’ 활동의 정당성도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방법은 너무 안이하고 거칠었다. 때로는 불법적이었던 것 같다. ‘블랙리스트’는 전 정부에서도 항상 있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지금도 ’마녀사냥‘에 언제나 있듯 블랙리스트는 존재할 것이다. 필자도 방송출연이 갑자기 중지되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최근 많아졌다. 보수논객이 설자리가 너무 좁아졌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형의 증거가 없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고 있다.

왜 하필 박근혜 정부에서만 일까? 결정적 차이는 ‘권력의 독점’이다. 다른 정부는 적어도 ‘권력의 과점 정부’였다. 나눠먹기인 것이다. 그래서 별도의 ‘블랙리스트’는 필요 없었을지 모른다. 서로 역사를 공유했고 파이도 함께 나눴다. 눈빛만 보면 알 정도로 팀워크가 맞았다. ‘코드인사’의 순기능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인사를 포함한 모든 권력을 독점했다. 친박의원들 조차 소외됐다고 했고, 정권을 만든 원로그룹들도 ‘그러려고 절 도우셨어요?’라는 모욕을 당하고 물러서야 했다. 그 부작용은 예상 이상이었다. 인사는 적체되었고, 권력은 최순실 일가와 같은 비선이 사유화했다. 동지가 없으니 눈빛만으로는 안됐고, 그러니 리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위의 뜻입니다’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비난은 최고 정점으로 향했다.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순간 모든 책임은 최고권력자에게 쏠리고, 힘에 눌려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도 떠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증거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블랙 리스트’의 진실일 것이다.

현 정부를 포함해 모든 정권에서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보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법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 어렵더라도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도 좋은 결과로 귀결될 수 없다. 덤으로 ‘패가망신’에 엄청난 국가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얘기했듯이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우파진영 국민들의 대통령도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과연 그 길로 가고 있는가? 권력행사는 민주적이고 합법적인가? 집권초기는 모두 숨을 죽인다. 그러나 실정이 쌓이면 어느 시긴가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그때는 이미 수습하기에 늦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그랬듯....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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