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만의 귀국,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인터뷰
"한미일 협력 체제 약화, 의도적 무능은 아닐까
中중심 대안질서 생각한다면 내놓고 토론하자"
두 달만의 귀국,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인터뷰
"남북·경제·한미관계에 대한 걱정들이 태산
IMF 위기 때보다도 고국 걱정 깊이가 깊더라"
"만나면 다들 고국에 대한 걱정들이었다. 남북 문제·경제 문제·한미 관계에 대한 걱정들이 태산이더라. IMF 위기 때도, 한국 상황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았을 때도 미국에 있었는데, 그동안의 걱정과는 깊이가 달랐다."
두 달 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귀국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다.
델라웨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 전 위원장은 그간 미국에 있을 때면 주로 동부에 체류했으나, 이번에는 서부로 향했다. 익숙한 사람들만 만날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 전날까지 한인 지도자들과 만난 김 전 위원장이 전한 교민사회의 우려는 무거웠다.
"크레인노조 하는 것 보라. 어떻게 新산업 하나
대외환경 탓하는데 '미중 무역전쟁'은 최근 일
마치 추경 못해서 문제인 것처럼…기가 막히다"
전문 분야인 경제 문제에서 김병준 전 위원장은 "우리 경제의 기본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위원장은 "이 정부 들어서 자꾸 성공한 사람들을 처벌해, 성공하는 사람이 겁을 먹는 사회가 됐다. 이런 사회에서는 동력이 나오지 않는다"며 "평등·분배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공한 사람을 처벌하면 누가 성공하려 하겠나. 펀더멘탈을 하나하나 따지는 것보다도 이러한 기본적인 분위기가 큰 문제"라고 개탄했다.
아울러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진흙탕이 많아, 발에 진흙을 묻히지 않고서는 성공으로 올 수 없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진흙탕을 없애는 일인데, 성공한 사람을 계속 처벌해댄다"며 "진흙을 밟으며 성공해왔던 사람들도 자식들이 진흙 밟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는데, 왜 그 사람들을 다 적으로 돌려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비대위원장 시절, 김 전 위원장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책당국은 '화살'로 '과녁'을 맞춰야 하며, 바람이 불었다거나 옆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거나 어젯밤에 술을 한 잔 했더니 안 맞는다거나 하는 '남탓'은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미국에 다녀온 사이, 새롭게 추가된 '대외환경 핑계'에 김 전 위원장은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김 전 위원장은 "자꾸 정부가 대외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환경적 요인이 좋지 않아진 것은 최근의 일"이라며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다들 호황이었는데,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펀더멘탈과 분위기가 가라앉았는데, 마치 추경 못해서 무슨 큰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추경을 하면 경제가 나아질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라며 "추경으로 (경제)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다그쳤다.
4차 산업혁명이니, 규제혁신이니 말의 성찬(盛饌)은 있지만, 정부당국이 실제 움직이는 방향은 다르다. 무인 소형 타워크레인이 확산되자 타워크레인 노조가 파업에 나섰고, 당국은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김 전 위원장은 "크레인 노조가 하는 것을 보라.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가 신(新)산업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생각인지 물어보고 싶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생각이 있을까. 생각이 있으면 가서 귀띔이라도 했을 것이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한미일 협력 체제 약화, 의도적 무능은 아닐까
文대통령 '중국몽' 발언…속내의 일단 보여줬다
中중심 대안질서 생각한다면 내놓고 토론하자"
김병준 전 위원장이 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막 추대됐을 때, 일본 자민당의 실력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많은 계파 의원들과 함께 김 전 위원장을 예방했다. 그러나 얼마 전 유기준·정진석 의원 등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달랑 비례대표 참의원 한 명이 우리 외통위원들을 맞이했다.
급격하게 악화되는 대일 관계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내가 비대위원장을 할 때, 마지막으로 일본을 다녀오지 않았느냐"며 "그분들과 약속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났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분들이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 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돼 있더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더 큰 걱정은 이러한 한일관계 악화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없다는 게 더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런 의심을 한다"며 화두를 던졌다. "한미일 삼각 협력 체제가 와해돼야 한반도 평화·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이 정부의 분위기인 것은 아닐까"라며 "외교가 실종됐다는 게 과연 의도적인지 실력이 없어서인지, 외교무능인지 의도된 무능인지를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12월 베이징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몽"을 치켜세우며 "우리는 작은 나라지만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을 상기시킨 김 전 위원장은 "대국을 섬기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생각하는 것일까"라며 "한미일 삼각 체제의 대안적 질서로 뭘 생각하는지 속에 들어있는 게 있으면 내놓고 토론을 하자. 우리 국민들이 이야기하고 전문가들끼리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촉구했다.
'국가주의' 향한 공세의 칼날, 더욱 예리해져
"교육철학도 없는 정부구성원들, 곳곳에 채찍
뭐든지 국가가 법 만들어 개입·규제하는 세상"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궤멸적 패배를 당한 직후, 한국당의 '구원투수'로 부상한 김병준 전 위원장은 차기 전당대회만을 준비하는 2~3개월짜리 비대위원장이라면 맡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아젠다를 던지고 제1야당의 경제·안보 '대안 마련'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자신만의 '시간표'가 머릿속에 짜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취임 직후 우리 사회에 던진 '국가주의' 논쟁은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김 전 위원장은 "미국에 있으면서 다시 한 번 자율적인 체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다시 느꼈고, 교민들도 다들 동의했다"며 "미국은 소비자와 경영진·채권자·주주가 자기들끼리 시장 안에서 하는 일을, 우리는 뭐든지 국가가 법을 만들어 곳곳에 개입하고 규제한다"고 '국가주의'를 향한 문제제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의 배임죄를 이야기하니 미국 변호사들이 '그게 어떻게 죄가 되느냐. 경영판단의 문제인데 왜 감옥에 가느냐'며 이해를 못해,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미국에서는 죄가 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죄가 되는 게 너무 많다"고 개탄했다.
현 정부 들어 개인과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파고드는 '국가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는 경영자나 배임처럼 거창한 주제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김 전 위원장은 "어떤 학부모로부터 들은 희한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김 전 위원장은 "나는 아이들에게 플라스틱 그릇을 주지 않고, 항상 자기(瓷器) 그릇을 썼다"며 "자기 그릇을 쓰면 (잘못하면 깨지거나 금이 가니까) 아이들이 조심하게 되지 않느냐. 이를 통해 식탁과 놀이공간은 다르다는 것을 일깨우고 식탁 예절을 배우도록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몬테소리'나 '발도르프'에서도 아이들에게 플라스틱을 주지 않고 자기를 쓰는데, 어느날 감독기관에서 나오더니 아이들에게 위험하니 전부 바꾸라고 했다더라"며 "각자의 교육 방법이 있는 것인데, 무책임하고 자기보신적이며 교육에 대한 철학도 뭣도 없는 정부 구성원들이 곳곳에 채찍을 들이대고 감독하는 세상"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시장과 자유·자율을 높이 사는 정당
이 정당이 이겨야 탈국가주의 새 질서를 만든다
기여할 수 있다면 뭐든지…어려운 곳도 가겠다"
김병준 전 위원장은 귀국 당일인 지난 4일 대구 영남대를 찾아 특강한데 이어, 7일에는 대구상고 모임으로 다시 한 번 대구를 찾았다. 이달말에는 고향 경북 고령 방문도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정치 행보와 관련해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몇 번이나 "당의 비대위원장을 지낸 당사자로서, 당이 필요로 한다면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던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당에는 기본이 깔려 있다. '아이노믹스'를 구상할 때,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정당이 시장주의 보수, 자유와 자율의 정신을 높이 사는 정당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아니다. 좌파와 국가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하고, 시민사회의 동력을 살리기보다는 정치권력을 갖고 해결하려 한다"는 평가와는 대조적이다.
내년 총선과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이 큰, 이 정당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기고나서 여유가 생기면, 탈국가주의를 통해 우리 국민의 에너지를 성장의 엔진으로 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에 기여할 수 있다면 내가 뭐든지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은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의 구체적인 출마 지역구에 대해서는 "꽂으면 당선되는데에 갈 이유가 없다"며 "당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게 있기 때문에, 내가 필요하다면 어려운 곳에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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