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흠집 오징어 상품화 통해 매출 45% 신장
‘비닐하우스 새우’, ‘통조림 나물’ 등 연중 철없이 파는 상품도 인기
이커머스 업체들의 공세와 차별적 영업규제,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매출 방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거나, 신기술 도입이나 사전 비축을 통해 제철 먹거리를 1년 내내 ‘철없이’ 팔기도 한다. 뉴트로 열풍과 마니아층을 겨냥한 기획 상품도 쏟아내고 있다.
PC방에 가면 ‘오징어 숏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게임에 몰입한 손님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영화관 스낵코너에서도 ‘버터구이 오다리’는 줄 서서 사먹는 인기 메뉴다. 오징어 다리는 몸통보다 질기지만 씹는 맛이 좋고 게임이나 영화를 즐기며 오래 물고 있기에도 편해서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그럼 그 많던 오징어 몸통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홈플러스가 이달 출시한 ‘짜지 않은 몸통 건오징어’(130g/4미/9990원)는 ‘왜 시중에선 대부분 오징어 다리만 팔까?’란 질문에서 출발한 상품이다. 남은 몸통은 주로 식당에 팔린다. 식감이 부드러워 식재료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마른 오징어를 먹을 때에도 다리는 어르신들이 먹기 불편하고, 몸통만 원하는 사람도 많다. 미식가는 오징어를 귀부터 먹는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이에 홈플러스는 ‘어디 한 번 몸통만 팔아보자’ 생각했다. 원양산 물량을 저렴하게 공수해 구룡포에서 5일간 자연해풍으로 건조하고, 염수농도도 3% 정도로 평균(5%)보다 낮춰 누구나 부담 없이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오프라인 유통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는 가운데서도 이달 홈플러스 건오징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5%나 뛰었다.
홈플러스는 대표적인 ‘엄마 반찬’인 나물류를 참치캔처럼 통조림으로 만든 ‘나물캔 4종’(120g/고구마순/시래기/곤드레/고사리/1980~3300원)도 내놨다. 나물은 손질과 세척이 번거로운 데다 유통기한이 짧아 다 먹기도 전에 버려지기 일쑤인데, 정성껏 손질한 나물을 삶아 멸균 포장해 오래 두고 언제든 손쉽게 조리할 수 있게 했다.
최근 내수침체 현실에서 나물을 캔으로 상품화함으로써 신선 농가 재고 부담을 낮춘다는 의미도 있다. 이 상품은 본래 20개 스페셜 점포 전용 상품으로 기획했지만, 찾는 고객이 많아 이번 주중 전국 점포와 온라인몰로도 확대 판매할 예정이다.
홈플러스가 대형마트 단독으로 출시한 ‘국내산 바이오플락 생물 새우’(100g/3490원/흰다리새우)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철없는’ 새우다.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 위치한 1만 평 규모의 대형 실내 양식장에서 바이오플락 양식기술(BFT)을 이용해 1년 내내 국내산 생물 새우를 맛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동안 고객들은 국내산 노지 양식새우 시즌(8~10월)이 아닌 때에는 주로 수입산이나 냉동 새우를 찾아야 했다. 특히 이 새우는 수질정화 미생물을 먹여 키워서 비린내가 적고, 식감이 탱글하며 단맛도 일품이라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제철에 얼린 제주참조기’(8마리/8990원)는 어획량 감소로 갈치와 오징어 시세가 폭등함에 따라 고객들이 대체 수산물로 참조기를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게끔 돕고자 올해 처음 기획했다. 제철인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제주 청정해역에서 어획한 참조기를 전용선별기로 선별하고 급속냉동하는 방식으로 사전 비축해 고객들의 수산물 물가 부담을 낮추고 있다.
‘손질오징어’(국내산/해동/4마리/9990원)는 일종의 ‘못난이’ 상품이다. 최근 국내산 오징어는 가격이 비싸 살 엄두가 나지 않는데, 홈플러스는 보통의 채낚기 대신 그물로 어획한 오징어를 사들여 팔기로 했다. 그물 오징어는 채낚기 물량보다 규격이 일정치 않고 군데군데 흠집이 있지만, 가격이 저렴한 데다 유통업체가 조금만 수고하면 일반 상품처럼 문제없이 즐길 수 있다.
홈플러스는 선단의 그물 어획 물량을 대량 구매하고, 이를 손질하고 내장까지 제거하는 방식으로 고객들이 손쉽게 국내산 오징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최근 매장 고객 방문이 뜸한 가운데서도 이달 50톤 이상 물량이 완판됐으며, 전체 해동오징어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3% 신장하는데 기여했다. 최근 이마트 ‘못난이 감자’의 사례처럼 산지 농가에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최근 메가 트렌드로 떠오른 ‘뉴트로(New-tro)’ 열풍을 공략한 신상품도 내놨다. 대형마트 최초로 롯데칠성음료와 출시한 ‘델몬트 레트로 에디션’(9900원)은 과거 집집마다 보리차용 물병으로 많이 쓰였던 델몬트 주스 유리병과 오렌지‧포도 주스(각 1.5L)를 묶은 세트 상품이다. ‘동서식품 맥심모카골드 커피믹스 라디오증정 에디션’(260T/2만9800원)은 아날로그 감성의 라디오를 주고, ‘냉동 옛날복고 돼지삽겹살’(오스트리아산/800g/9990원)은 추억의 ‘냉삼’을 환기시킨다. 1960년대 삼양라면을 그대로 재현한 ‘삼양라면 레트로 패키지’도 한정판으로 선보인 바 있다.
마니아층 공략을 위한 신상품도 눈에 띈다. ‘돼지등심덧살’(1kg/팩/2만4590원/스페셜 점포 취급)은 시중에서 가브리살이나 가오리살로 불리며 비싸게 팔리는 특수부위를 100g당 2000원 대에 내놓은 상품이다.
돼지 한 마리당 250g 정도만 생산되는 걸 감안하면 돼지 4마리를 잡아 만든 셈이다. ‘마이크로닉스 광축게이밍키보드’(4만4900원)는 게임 덕후들을 겨냥했다. 최신 4세대 광축 스위치를 적용해 반응속도가 빠르고, 키 수명 1억 회의 높은 내구성과 완전 방수 기능도 특징이다.
신상품 외에도 최근 ‘부모님 대신 장보기’ 캠페인이나 ‘점포 픽업 서비스’에서도 대형마트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이커머스 업체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인 가운데, 대형마트는 강점인 생필품을 앞세워 30~50대 고객들이 온라인 주문을 어려워하는 노부모들을 위해 ‘효도 쇼핑’에 나서도록 독려하는가 하면, 오프라인 매장의 강점을 살린 픽업 서비스를 통해 최근 이커머스 업계 배송 지연 사태의 틈새를 공략하기도 하는 것이다.
김웅 홈플러스 상품부문장은 “고객의 가치 있는 소비생활을 돕기 위해 익숙함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관점의 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다”며 “좋은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위축된 내수 경기 회복도 지원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