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확진자 발생 3일 전 각 부처에 공문 발송…지침 숙지 못했나
농식품부, 해수부와 같은 층 사용…폐쇄 매뉴얼 해석에 우왕좌왕
1급 보안기관에도 불구 안전불감증 도마 위…최첨단 원격근무시스템 무용지물
정부세종청사 입주 부처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시설폐쇄등 중앙대책본부(이하 중대본) 권고안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산됐을 것이라는 합리적 비판이 제기돼 주목된다. 중대본의 코로나19 감염 시설들의 폐쇄 지침(권고안)또한 그 결정 주체가 불분명하는 등 권고안 자체가 다소 두리뭉실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6일 데일리안이 입수한 ‘중대본 공문 125호’에 따르면 복수(2인 이상)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청사 내부에서 발생할 경우 해당 층 전부를 폐쇄하라는 권고안을 발송했다. 이 공문은 지난 7일 전국 중앙부처에 모두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대본이 공문을 발송한 시점은 7일이다. 이때까지 세종청사는 보건복지부 직원(3번 확진자) 밖에 없었다. 중대본은 3번 확진자가 정부청사 직원으로 확인되자 해당 지침을 중앙부처에 발송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확진자 없는데…해수부 단독으로 층 폐쇄 못 해
중대본 지침 내용에는 ‘시설 폐쇄 등 조치’ 항목이 담겨 있다. 시설 관리자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보건 당국 안내에 따라 시설의 일시적 폐쇄, 일반인 출입금지, 시설 내 이동제한 등 조치를 해야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설 폐쇄 등 범위는 확진자 발생 규모, 이동 동선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다만 반드시 시설 전체를 폐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을 넣었다. 이 내용으로 정부세종청사관리사무소,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가 혼선을 빚게 되는 애메한 상황에 놓인다.
시설 폐쇄 범위는 1명 발생 시 이동 경로가 명확할 경우 해당 사무실과 이동 경로 중심 폐쇄를 권고하고 있다. 방문자를 포함해 복수 발생이 나타나면 이동 경로가 명확할 때 같은 층에서 복수의 확진자 발생 시 해당 층 전부를 폐쇄, 다수의 층에서 확진자 발생 시 해당 건물 전체를 일시적 폐쇄 검토하는 매뉴얼이 전달됐다.
이 매뉴얼대로라면 해수부는 최초 9번 확진자가 5동 4층에서 발생 후 같은 층에서 복수의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해당 층을 전부 폐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해수부는 10일 9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5동 4층 폐쇄 여부를 결정하는데 주저했다. 이로 인해 불과 이틀만인 12일, 4층에서 18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급기야 해수부는 12일부터 전직원을 재택근무로 돌리며 진화에 나섰다. 정부청사에 확산된 코로나19는 16일 오전 현재 40번 확진자(15일 발생) 이후 아직까지 추가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해수부가 확진자 증가에도 해당 층을 폐쇄하지 못한 것은 매뉴얼 숙지 미숙이나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라는 견해도 높다. 그러나 여러가지 정황을 놓고 볼 때 해수부가 단독으로 층 폐쇄를 결정하기에는 정부세종청사 구조상 쉽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중대본 지침은 권고안에 해당된다. 매뉴얼을 무조건 시행한 의무는 없는 것”이라며 “해수부가 위치한 5동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 농식품부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수부 단독으로 층 폐쇄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식품부 역시 층 폐쇄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농식품부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층 폐쇄에 동의할 이유와 명분이 없는 것이다. 시설관리자인 행정안전부 소속 정부청사관리본부 역할도 미미했다. 층 폐쇄에 대해 서로 떠넘기는 전형적인 '절차상 오류'가 반복됐다.
◆매뉴얼 있으면 뭐하나…정부세종청사 구조적 문제 드러나
이번 세종청사 내 확진자 대량 발생은 향후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도 매뉴얼이 무용지물 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결정권자도 우왕좌왕하는 마당에 과감한 결단력으로 모든 직원이 ‘원격(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더구나 정부세종청사는 각 동에 2~3개 부처가 함께 공존하는 구조다. 5동에는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국토교통부가 입주해 있다. 6동에는 환경부와 국토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이 같은 층을 사용한다.
실제로 이번처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각 부처 공조도 어렵고 매뉴얼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정부세종청사 건립 당시 ‘원격근무’와 ‘화상(영상)회의’에 대해 첨단 시스템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10~12일 이틀간은 관련 부서를 제외하고 정상근무가 이뤄졌다. 해수부 확진자 27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명이 이 기간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원격근무를 탄력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10일에는 인사혁신처가 각 부처에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공무원 대상 유연근무 행동지침’을 전달했다. 해수부와 농식품부는 지침에 명시된 ‘부서별 적정비율’을 이틀이 지난 12일에서야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확진자가 발생한 해수부도 난감했겠지만 함께 엘리베이터와 구내식당 등을 공유하는 농식품부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공무원 조직이 공문 등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나중에 감사 등에서 문책을 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대본도 매뉴얼 지침을 좀 더 확고히 해야 한다. 권고에 그치면 다수 부처가 입주한 세종청사처럼 의사결정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확실한 대응 매뉴얼과 과감한 원격근무로 사전 예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