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보험업계 순익 5조3367억…1년 새 26.8% 급감
코로나19로 추가 타격 불가피…자산운용 족쇄에 '발목'
국내 보험사들의 실적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나쁜 수준까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전반적인 경제성장률 둔화와 이에 따른 저금리 기조 고착화는 보험사의 수익성을 앞으로 더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다. 이처럼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보험사 수익률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해외투자 족쇄를 이젠 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는 모습이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들이 거둔 당기순이익은 5조3367억원으로 전년(7조2863억원) 대비 26.8%(1조9496억원)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보험업계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적은 액수다.
보험사의 급격한 실적 악화의 주요인으로는 저성장과 저출산, 저금리 등 3저 현상이 꼽힌다. 앞으로 고령화 심화가 불가피한 만큼, 보험사의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악재까지 겹치면서 영업 위축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급속히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보험사의 투자수익률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이번 달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 1월 전망치보다 6.3%포인트 낮춘 -3.0%로, 미국 경제 성장률도 2.0%에서 -5.9%로 하향 추산했다.
이 같은 경기 침체 심화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릴레이 금리 인하를 시행하고 있다. 우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0.0~0.25%까지 내려 잡았다. 또 영국(0.1%)과 호주(0.25%), 캐나다(0.25%), 스웨덴(0%), 노르웨이(0.25%) 등에 이어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0.75%까지 인하했다. 국내 기준금리가 0%대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와중 보험사들이 그나마 투자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해외투자 확대가 꼽힌다. 국내를 포함한 주요국들의 금리가 크게 하락하면서, 비교적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신흥국 시장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이에 따른 반대급부로 선진국 시장에 대한 금융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신흥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산운용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차원이다.
문제는 보험사의 해외투자가 보험업법 규제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 일반계정과 특별계정의 자산 운용 중 해외자산 비중을 각각 30%, 20%로 제한하고 있다. 한화생명(29.3%)과 푸본현대생명(26.2%), 처브라이프생명(24.9%), 교보생명(22.7%), 동양생명(22.4%), 농협생명(21.4%) 등은 이미 일반계정의 운용자산 대비 외화유가증권의 비율이 20%를 상회하며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에 최근 보험사의 해외투자 한도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20대 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등장하면서다. 하지만 사실상 입법이 실패로 끝나면서 새로 구성될 21대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보험사의 해외투자 한도를 50%까지 풀어줘야 한다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은 지난 3월 담당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안을 심의하는 법제사법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면서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다음 달 20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국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험업법 개정안이 상정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보험업계는 앞서 해외투자 한도를 없앤 국가들의 사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 제로금리를, 2016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하자 금융권의 해외투자가 확대되기 시작했고, 이런 기조에 맞춰 2012년 보험사의 외화자산에 대한 투자 한도 규제를 폐지했다. 또 대만 정부는 2003년 보험사의 해외투자 한도를 20%에서 35%로, 2007년에 45%로 지속 확대한데 이어 2014년 해외투자 한도에서 외화표시채권을 아예 제외한 상태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해외자산 투자 한도를 없앤 일본이나 한도를 높이고 해외자산 투자를 장려하는 정책과 제도를 시행한 대만과 같이 우리나라도 보험사의 해외투자에 대한 한도 확대 및 자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금융권 중 유독 보험사에만 해외자산 투자 한도 규제가 남아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