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임피 적용시기 60세' 늦춰달라 주장
2021년 국책은행 직원 10명 중 1명 임피 대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금융노조가 '임금피크제 적용 시기를 60세로 늦추자'는 구호를 들고 나와 금융권의 화약고로 작용할 조짐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최근 임단협 진행을 위한 만남을 가졌다. 이에 노조는 단체협약에서 은행원 및 금융 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과 함께 금융권의 임금피크제 적용나이를 만 60세 이후로 늦추는 요구사항 등을 내걸었다.
임금피크제는 금융사 별로 만 55~57세가 되면 만 60세인 정년까지 해마다 연봉이 일정 비율로 줄어드는 제도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청년 채용을 늘리라는 취지에서 도입돼 시행 중이지만,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계륵'같은 존재가 됐다.
국책은행에서는 "차라리 희망퇴직을 도입해달라"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통상 은행권 기준으로 1990년대 초반에 입사한 50대 후반 직원들이 내년부터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는데, 적용 대상 직원이 전체의 10% 수준에 이르게 되면서 조직의 노령화에 따른 효율성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경우, 임금피크 인력은 2019년 530명에서 2021년 1000명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2022년이 되면 산업은행 직원 3200여명 중 550여 명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다. 국책은행의 직원 10명 중 1명 이상이 임금피크에 진입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국책은행 노사는 명예퇴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명예퇴직금 상향 등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국책은행도 시중은행처럼 명예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2월엔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문제를 두고 노사 대표자와 정부 관계자가 머리를 맞댔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은 '돈 문제'였다. 국책은행의 명예퇴직금은 '공무원 명퇴금 산정 방식'에 따라 임금피크제 기간 급여의 45%만 특별퇴직금 명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퇴사 직전 20∼36개월치 평균 임금에 자녀 학자금, 의료비, 재취업‧전직 지원금 등을 추가 지급하는 시중은행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결국 국책은행 직원들 입장에서는 명예퇴직금을 받기보다는 임금피크제를 택하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효율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임피제 적용 직원 상당수는 심사나 사후 관리 업무 등 사실상 현업에서 멀리 떨어진 업무를 맡는다. 결국 남은 인력의 업무부담이 커지게 된다.
대안으로는 국책은행에 명예퇴직의 뒷문을 열어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는 형평성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국책은행에만 명예퇴직금을 높여주면 다른 공공기관 등에서도 '우리도 해달라'는 아우성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권의 고임금 구조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임금피크제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반면 시중은행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위기대응과 금융디지털화에 발맞추기 위해 인건비 부담 줄이기에 나서는 등 허리띠 조르기가 한창이다. 국책은행과 달리 시중은행의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거나 제도 자체를 재검토하는 단계에 이른 상황이다. 시중은행은 임금피크 대상자뿐 아니라 근속 15년 이상 직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국책은행 보다는 인사적체 고민이 적지만, 비용부담 문제라는 또 다른 부담을 지고 있다. 희망퇴직의 경우 장기적으로 인건비 절감과 조직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당장은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돼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특별퇴직금 등을 줄이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다.
실제 NH농협은행은 만 40세 이상 직원과 1963년생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지난해 총 356명이 짐을 쌌다. 1963년생 퇴직자에게는 퇴직 당시 월평균 임금의 28개월치가 특별퇴직금으로 지급됐는데, 전년도(36개월치)에 비하면 크게 쪼그라든 수준이다.
하나은행도 지난해 임금피크 특별퇴직 대상자인 1964·1965년생에게 각각 월 평균임금의 22·31개월치를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했다. 이는 최대 36개월치를 얹어준 전년도에 비해 5개월 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15년 이상 근무한 만 40세 이상 직원 대상인 준정년 특별퇴직금도 최대 27개월치로 전년도에 비해 6개월치가 줄었다.
이와 관련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직무급제를 도입에는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명예퇴직 조건을 요구하고, 임피제 기간까지 늦춰달라고 하면 과도한 요구"라면서 "아무리 정부여당이 친노동정책을 펴더라도 여론과 형평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