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서비스보다 ‘표심’ 챙기는 게 우선
‘타다·배민’ 사태, 부정적 선례로 남아
취임 3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는 원동력으로 스타트업 육성을 강조했으나, 업계에서는 타다 사태로 이러한 정부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정부가 지나친 규제와 간섭으로 새로운 사업이 성장할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의 이러한 모습은 북한의 ‘화전양면전술’과 닮았다는 지적이다. 이 전술은 앞에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기존 산업 밥그릇 지켜주기에 바빠 정작 스타트업을 죽이는 일을 벌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결합해 디지털 경제를 선도해 나갈 역량이 있다”며 “혁신 벤처와 스타트업이 주력이 돼 세계를 선도하는 ‘디지털 강국’으로 대한민국을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타트업계에서는 규제로 인해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타다다.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승차공유 플랫폼이 국내에서는 불법이 됐다.
법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으로 서비스되고 있던 타다는 지난 3월 6일 일명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좌초됐고, 결국 지난달 1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벤처업계와 스타트업계에서는 타다가 부정적 선례로 남았다고 우려한다. 기득권의 반발에 따른 정부의 정책을 둘러싸고 ‘총선 표심 잡기’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경제 체질 개선과 구조 개혁 방편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규제혁신과 공유경제 활성화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결국 이번 결정으로 ‘규제혁신’이나 ‘공유경제 활성화’, ‘스타트업 육성’ 보다는 기득권 챙기기가 우선임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 됐다.
재계와 벤처업계 역시 기득권의 손을 들어준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여객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래를 이렇게 막아버리는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또 다른 미래 역시 정치적 고려로 막힐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벤처업계도 지난달 열린 제5차 혁신벤처생태계 정기포럼에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대표적인 규제 사례로 꼽았다. 법이 통과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신사업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해당 기업을 넘어 벤처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도 관련 공식 입장문을 통해 “정부, 국회, 검찰 모두 한 방향으로 스타트업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달의민족(배민)도 타다 사례와 유사하다. 배민은 건당 수수료율 5.8%(부가세 포함 6.38%)를 적용하는 오픈서비스를 지난달 1일 도입했으나, 한달 만에 원상복귀했다.
오픈서비스는 주문 성사 시 배민이 5.8%의 수수료를 받는 요금체계다. 기존에는 8만8000원의 월정액 광고인 ‘울트라콜’ 중심의 요금체계를 써왔다. 배민은 5.8%의 수수료는 국내외 배달앱 업계의 통상 수수료보다 낮은 수준이고 시행에 앞서 실시한 자체 시뮬레이션에서도 입점 업주의 52.8%가 배달의민족에 내는 광고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독과점을 통한 부당한 이익 추구’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논란은 정치권이 개입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배민을 향해 공세를 퍼부으며 불을 지폈고 지자체들은 독자적으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배민 요금제 개편이 소상공인에 큰 부담이 된다며 수수료를 낮추기 위한 특별법 입법 등의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선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스타트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서비스 경쟁력을 떠나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부가 지나치게 기존 사업의 눈치를 보느라 스타트업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며 “해외 사업자들이 새로운 사업으로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변화가 없어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