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주기 논란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폐지, 담합 등 검찰 우선 수사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지주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 입법예고
정부가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기업관련 법안을 재상정하기 위한 입법예고 절차에 들어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10일과 11일 각각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재벌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과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다시 그대로 들고 나온 것이다.
그간 야당과 재계의 반대로 무산됐던 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 법안들을 21대 176석의 거대 여당의 힘을 빌려 신속하게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기업들은 안 그래도 어려운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규제 강화 법안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삼성 등 금융부문 자산이 5조원을 넘는 금융산업 그룹을 규제하는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앞서 고용노동부도 지난달 해고자와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상태다.
기업들로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실적 감소, 글로벌 경기침체 등 전 방위적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더욱 힘든 상황에 봉착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긴장태세다.
◆더 강력해진 조사권…공정위 전속고발제 폐지? 고발없이도 검찰 별도수사 가능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은 2018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안으로, 같은 해 11월 국무회의 의결과 2019년 3월 정무위 상정을 거쳐 올해 4월에는 전부가 아닌 일부개정안으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5월 말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 된 안과 동일하다.
개정안에 따르면, 봐주기 논란이 있는 공정거래법 상 가격담합·공급제한·시장분할·입찰담합 등 사회적 비난이 큰 경성담합에 대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한다. 또 그간 형벌부과 사례도 없고, 법체계상 맞지 않는 기업결합 및 일부 불공정거래행위 등에서의 형벌도 폐지한다.
공정위의 고발이 없더라도 검찰이 별도로 수사해 기소까지 할 수 있게 담합조사권을 강화한 것이다. 입찰담합과 공소시효 1년 미만 사건은 검찰이 우선 수사한다.
대신 민사구제 수단으로 불공정거래행위의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의 금지·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와 손해배상소송 시 손해액 입증을 지원하기 위한 법원의 ‘자료제출 명령제’를 도입한다.
행정집행의 실효성을 높일 수단으로 과징금은 2배로 올린다. 담합의 경우는 10%에서 20%로, 시장지배력남용은 3%에서 6%로, 불공정거래행위는 2%에서 4%로 상향하고, 합병·분할 시 시정조치·과태료의 부과 근거규정도 신설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현행 210개사→591개사로 적용 늘어
또한 기업의 사익편취 규제는 강화되고 소유·지배구조도 손본다.
현재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기업은 총수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사인데, 개정안에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없이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을 20%로 일률적으로 낮추고 이들이 보유한 자회사(총수일가 지분 50% 초과)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강화된 규제를 적용하면 올해 5월 1일 지정 기준으로 현재 210개사인 규제대상은 향후 381개사가 추가돼 총 591개사로 늘어난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상장 계열사에 한해 특수관계인 합산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금융보험사와 관련해서는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와 무관하고, 사익편취 악용 우려가 있는 계열사 간 합병을 의결권 허용사유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새롭게 상호출자집단으로 지정되는 집단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 제한 규제를 신설하고 신규 지주회사를 대상으로 자·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상장 20%→30%·비상장 40%→50%)도 강화된다.
대기업이 유망 벤처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도록 벤처지주회사 설립요건(자산규모 5000억원→300억원)을 완화하고, 자회사의 대기업집단 편입 유예기간(7→10년)을 확대하면서 비계열사의 주식취득 제한을 폐지하는 등 행위를 제한한 규제 부담도 완화한 것이다.
◆CVC도입은 정부 입법에 빠져…금산분리 원칙 훼손 우려 의원입법으로 추진
제한적으로 검토키로 했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도입에 대해서는 관련 내용을 추가하거나 별도로 정부안을 제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의원 입법안들이 국회에서 계속 발의되고 있고, 금산분리 완화에 따른 부작용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벤처지주회사의 활성화를 담고 있는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CVC 허용을 담고 있는 의원안과 같이 종합적으로 국회에서 심의될 것”이라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부작용이 최소화될 수 있는 방안으로 입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CVC의 무조건적인 허용 보다는 일부 부작용을 우려, 금산분리 원칙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여러 가지 조건을 달면서 허용하는 안 등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데 무게를 실었다.
이 같은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의 재상정과 관련해 첫 법안 상정 때인 2년 전과 경제상황이나 일부 기업 지배구조도 달라졌음에도 충분한 실태조사나 논의 없이 다수의 힘에 기댄 밀어붙이기식 법안처리 시도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최근 경제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당시 법안이 여전히 현 상황에서도 유효하며 경제 질서를 바로잡는 노력을 중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개원된 21대 국회에서의 경제민주화 관련된 입법의지들이 표명되고 있고, 그 같은 입법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재계는 담합 등에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사라지면 오히려 고발 남용이나 기관 간 중복수사의 우려가 있으며,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는 정부의 경영투명성 강화 차원의 지주회사 전환 정책과도 배치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는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정기국회 개회 전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목표로 개정절차를 서둘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