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주인 찾기 힘들고 정부 지원 명분도 희박
도산 방치시 고용, 관련산업 등 경제 파장 커
인도 마힌드라가 쌍용자동차의 대주주 지위를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앞으로 쌍용차의 운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인도에서 기자들과 만나 “쌍용차는 새로운 투자자가 필요하다. 투자를 확보할 수 있을지 회사와 함께 살펴보고 있다”면서 “투자자가 나오면 마힌드라가 대주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시 샤 마힌드라 부사장도 “만약 새 투자자가 생기면 자동으로 우리 지분율이 내려가거나 투자자가 우리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면서 쌍용차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마힌드라는 그동안 해외 투자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전기 스쿠터 사업 ‘겐제’와 함께 쌍용차가 꼽힌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인도 정부의 봉쇄 조치로 본사 실적까지 타격을 입으며 더 이상 해외 사업에 추가적인 자금을 쏟아 붓기 힘든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초 쌍용차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3년간 필요한 5000억원 중 2300억원을 추가 투자(나머지 1000억원은 쌍용차 자구책으로 확보, 1700억원은 산업은행에 지원 요청)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400억원의 특별 자금만 지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마힌드라의 ‘대주주 지위 포기선언’은 앞으로 쌍용차의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마힌드라로부터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게 됐음을 의미한다.
당장 실적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데다,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신차 및 친환경차 개발 비용이 필요한 쌍용차로서는 마힌드라의 이번 결정으로 세 갈래 길에 놓이게 됐다. 새 주인을 찾거나, 정부 지원으로 회생하거나, 어떤 외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무너지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새 주인 찾기, 업황 부진 속 ‘탈 내연기관’ 추세가 걸림돌
쌍용차 지분을 인수해 경영 정상화를 지원하겠다는 새 주인이 등장하는 것은 쌍용차나 우리 정부나 마힌드라 모두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마힌드라는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우리 정부는 혈세투입 등의 부담 없이 대량실업사태 등의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쌍용차는 경영정상화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기왕이면 새 주인이 풍부한 자금력과 함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이라면 한국GM이나 르노삼성과 같이 쌍용차도 스스로 수출시장을 개척하느라 애를 먹을 필요 없이 모기업의 물량 배정으로 충분한 수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시장 여건과 산업 트렌드 변화 등을 감안하면 새 주인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지난 수 년간 저성장 기조를 이어왔고, 주요 자동차 기업들도 해외 생산망을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축소하는 추세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생으로 수요나 투자 여력 측면에서 마힌드라로부터 쌍용차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만한 기업이 나오긴 힘들어 보인다.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電動化) 추세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쌍용차의 매물로서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각국의 친환경 규제에 발맞춰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들을 구조조정하고 전기차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차를 양산한 경험이 전무한, 내연기관 자동차 일색의 쌍용차를 인수하는 건 산업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결정이 될 수 있다. 쌍용차는 내년 출시를 목표로 준중형 SUV 차급의 전기차를 개발 중이지만, 마힌드라와 공동으로 진행해 온 프로젝트라 주인이 바뀌면 차기 전기차 개발부터는 기술사용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 지원, '명분 찾기' 관건…'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우려도
마힌드라가 지원을 끊은 상태에서 새 투자자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부 지원 외에는 쌍용차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방법이 없다. 당장 만기도래 차입금이야 어찌어찌 막는다 해도 신차 개발을 위한 투자 자금이 없으면 차를 팔아 돈을 벌어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끊긴다.
하지만 정부가 쌍용차를 지원할 명분이 충분치 않다. 쌍용차는 정부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2000억원 지원을 바라고 있으나 기금 지원은 배제되는 분위기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용도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지원하는 것이지만, 쌍용차 위기설은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전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거졌기 때문이다.
2018년 한국GM 위기 당시 지원모델도 불가능하다. 당시에는 최대주주인 제너럴모터스(GM)의 지원을 전제로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참여하는 모양새였지만, 쌍용차는 최대주주의 지원이 끊긴 상태고 산은은 주주가 아닌 채권자라 지원 당위성이 없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앞으로 장기적인 경영 정상화가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쌍용차는 기업 규모가 작고 내수 의존도가 높아 신차 한 종만 실패해도 실적에 큰 타격을 받는 구조다.
쌍용차 뿐 아니라 어떤 자동차 업체도 모든 신차가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통상 신차 개발에는 3000억원 내외의 비용이 투입되는데, 쌍용차와 같이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은 충분한 판매를 통해 개발비를 회수하지 못하면 그 여파를 감당하기 힘들다.
정부 자금이나 국책은행 자금 등으로 회생을 지원했다가 또 다시 경영난에 빠진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될 수 있다.
◆도산 방치하면 대량 실업 불가피…차 산업 생태계도 휘청
정부마저 손을 뗀다면 쌍용차가 자력으로 경영정상화에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애초에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면 마힌드라와 정부에 손을 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쌍용차가 정부의 방치 속에 도산한다면 그 파장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놓아야 한다. 현재 쌍용차의 직접 고용 인원만 5000명에 육박한다. 여기에 1,2,3차 협력사와 판매 대리점까지 감안하면 수만 명이 쌍용차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8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당시에는 부평과 창원공장이 남아있었기에 상당수 인원의 전환배치가 이뤄졌고, 협력사들의 피해도 제한적이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군산 지역으로 한정됐었다.
하지만 쌍용차가 도산한다면 일개 공장이 아닌 회사 자체가 사라지는 만큼 쌍용차 공장이 위치한 평택과 창원을 넘어 전국적으로 파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협력사들 중에서는 쌍용차 전속 협력사가 아닌 다른 완성차까지 부품을 공급하는 경우는 당장 연쇄 도산은 피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다른 완성차 업체들의 부담이 커진다. 5개사가 함께 지탱해 왔던 산업 생태계를 4사가 지탱해야 되는 만큼 개별 업체들이 짊어질 몫이 커지는 셈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 하나가 사라지면서 부품에서 완성차로 이어지는 기존 자동차 산업 생태계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경쟁사 입장에서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