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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현 지켜주지 못한 대한체육회·협회...무능인가 쉬쉬인가


입력 2020.07.04 12:23 수정 2020.10.07 18:33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최숙현 선수 신고 받고도 미온적 대처로 도마 올라

무능 아니라면 은폐 시도라는 합리적 의심 고개

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고 최숙현 선수가 죽음으로 호소한 뒤에야 쫓기듯 나서고 있다.


지난달 26일 청소년대표 출신의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가 부산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세상과 작별하기 전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유언 성격의 모바일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23세.


죽음 직후에도 ‘기사 한 줄’ 없었던 최숙현 선수의 통탄할 사연은 지난 1일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총감독 출신 이용 의원(미래통합당)의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다.


밝혀야 할 ‘그 사람들의 죄’는 최숙현 선수가 생전에 모아왔던 녹취록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를 근거로 유족들은 훈련 중 이어진 가혹 행위가 최숙현 선수를 극단으로 밀어 넣었다고 주장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최숙현 선수가 죽음 직전까지도 각 기관에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해왔다는 점이다.


2016년 이후 최근까지 전 소속팀 선배, 지도자, 팀닥터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가혹 행위와 폭언-폭행에 시달려왔다는 최숙현 선수는 지난 2월 경찰에 고소했고, 지난 4월 8일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이를 신고했다.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도 진정서를 제출했다.


악몽 같았던 경주시청팀을 떠나 부산시체육회로 소속팀을 옮겨 무너진 꿈을 다시 키워가던 최숙현 선수는 다시 좌절했다. 각종 기관에 사실을 알리며 ‘SOS’를 외쳤지만 이렇다 할 조치가 없었다. 가해자들의 뻔뻔한 태도와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등의 미온적이고 뒤늦은 대처는 최숙현 선수를 절망에 빠뜨렸다. 해결은커녕 좌절만 더 커진 최숙현 선수는 죽음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여론은 침통함을 넘어 개탄과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이용 의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폭행·폭언에 대해 신고를 하고 조사를 독촉했지만 하염없이 시간만 끌었다.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경북체육회 등 어느 곳에서도 최숙현 선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체육인 출신으로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이런 상황까지 벌어져 안타깝다. 4월8일 신고를 접수한 이후 피해 선수 측에 지속적으로 자료를 요청했지만 받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수가 소속팀을 옮겨 경주시청 감독 등과 분리된 상태였고, 우리는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며 “그렇게 하다 보니 시간이 3개월 가까이 흐르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철인3종협회가 내놓은 입장문. ⓒ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철인3종협회가 내놓은 입장문. ⓒ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철인3종협회는 “대한체육회가 조사 중이라 지켜보고 있었다”는 소극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하지만 협회는 대한체육회보다도 최숙현 선수의 문제를 먼저 접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통합당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진상규명 및 체육인 인권 보호 TF’ 위원장 이양수 의원에 따르면, 철인3종협회가 이미 2월부터 해당 사건이 문제가 돼 경찰에 넘어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숙현 선수가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협회 등에 신고 및 진정서를 접수한 4월 8일보다 2개월 가까이 먼저 피해 사실을 인지한 셈이다.


그러나 최숙현 선수에게 피해 사실을 묻거나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폭행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경주시청팀 감독에게만 전화를 걸어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감독의 말만 믿고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때 적절한 대응과 조치가 있었다면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 무능하거나 소극적 조치가 아니라면 은폐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감독과 전화 한 통화로 끝냈던 연맹은 국민적 공분 속에 문재인 대통령과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나설 정도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스포츠공정위원회 날짜까지 9일에서 6일로 앞당기는 등 이례적으로 빠른 행보를 그리고 있다.


휴일도 반납한 채 연맹사무실과 훈련장에서 땀 흘리는 체육인들은 여전히 많다. 그런 체육인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관리감독 기관과 경기단체연맹의 기능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 반응까지 일어나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고소했을 때도 뒷북 행정으로 뭇매를 맞았던 체육계다. 불과 1년 조금 넘었다. 무능인지 ‘쉬쉬하려는’ 은폐인지 알 수 없지만 역동적인 현 사회 분위기와 달리 도통 개선되지 않고 퇴보를 걱정해야 하는 체육계 관리감독 기구와 단체의 시스템 개혁은 다시 한 번 국민적 요구를 받게 됐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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