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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펀드 '전액 배상' 수용한 은행…'투자 책임 0%' 논란 남겼다


입력 2020.08.28 05:00 수정 2020.08.27 21:29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금감원 권고안 전격 수용…금융당국·정치권 압박에 '백기'

배임 우려 등 부담 남아…100% 보상 따른 부작용 우려도

라임 무역금융펀드 손실로 논란을 빚은 은행들이 결국 금융당국의 전액 보상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앞으로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데일리안

라임 무역금융펀드 손실로 논란을 빚은 은행들이 결국 금융당국의 전액 보상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최후통첩 기한의 마지막 날까지 수용 여부를 저울질하며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계속되는 압박에 끝내 백기를 든 모습이다. 은행들로서는 배임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면서 앞으로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금까지 이처럼 고객의 투자 책임이 0%였던 사례가 전무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한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오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라임 무역금융펀드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판매사가 손실 금액 전액을 배상하라는 금융감독원의 조정 권고를 전면 수용하기로 했다.


이에 은행들은 곧바로 손실 반환 절차에 돌입하기로 했다. 다만, 아직 법원 판단을 받아보지도 못한 와중 배상에 나서게 된데 대해 다소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선 우리은행 측은 "지난 달 이사회에서 결정을 한 차례 연기하면서 법률 검토 등을 면밀히 진행했다"며 "소비자 보호와 신뢰 회복을 위해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현재 해당 펀드와 관련해 검찰수사와 형사 재판 등 법적 절차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에게 신속한 투자자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분조위 방안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이는 투자자 보호 대책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지난 6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민법 제109조인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 사상 첫 100% 배상 결정을 내렸다.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투자자 가입 시점에 이미 투자 원금의 최대 98%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 상태였다. 금감원은 판매사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감춘 채 소비자들에게 라임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했다고 판단했다.


금융사별 해당 펀드 판매 금액을 보면 총 1611억원 중 우리은행이 650억원, 하나은행이 364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신한금융투자 425억원, 미래에셋대우 91억원, 신영증권 81억 등이다. 이 중 신영증권은 투자자와 자율조정을 통해 배상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이번 배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고 거듭하던 은행…당국 십자포화에 무릎


이번 판단이 나오기까지 해당 금융사들은 장고를 거듭해 왔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 달 이사회를 열고 금감원 분조위의 배상 권고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회삿돈으로 투자 손실을 물어주면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염려에서였다. 이에 내부 검토가 길어지자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에 권고안 수용 기한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수용 기한을 한 차례만 연기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둔 까닭에 이들은 늦어도 27일 전까지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금감원은 고강도 압박에 나서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우선 이번 달 11일 이례적으로 임원회의 당부사항 내용을 공개하며 배상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윤석헌 금감원장은 "금융은 신뢰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산업인데 최근 사모펀드 연쇄부실화로 금융산업 전체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부실상품 판매나 불완전판매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판매사가 고객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윤 원장이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언급하고, 여기에 여당까지 가세하면서 금융사들의 부담은 한층 커져 왔다. 편면적 구속력 제도는 분조위 권고를 금융사가 거부하더라도 소비자가 동의했다면, 권고 배상액이 일정 금액 이하의 소액일 경우 무조건 수용할 수 있도록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이다. 윤 원장의 발언 다음날인 12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편면적 구속력 내용이 담긴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힘을 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윤 원장은 지난 25일 열린 임원회의에서도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이 조정안을 수락해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활용하길 바란다"며 "분조위의 조정 결정 수락 등 소비자보호 노력을 금융사에 대한 금융소비자보호 실태 평가와 경영 실태 평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전액 보상 선례 남겨…부작용 커질까 전전긍긍


금융당국의 압력에 두 손을 들게 된 은행들로서는 앞으로 여러 측면에서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문제는 당장 지불해야 할 수백억원 대의 배상금이다. 금감원은 우선 은행들이 소비자 보호 명목으로 100%를 배상하고 추후 라임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라임운용의 실정을 고려할 때 녹록치 않은 방안이다.


아울러 역대 최초로 소비자 피해를 전액 물어줘야 할 만큼, 금융 상품 판매사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례로 남게 된 현실도 상징성이 큰 사건으로 남을 전망이다. 투자자에게 책임을 일부라도 지우지 않고 원금 전액을 돌려주는 선례를 만들게 됐다는 점은 금융사들의 이미지를 두고두고 훼손하는 주홍글씨가 될 공산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라임 펀드 사태와 금감원의 권고에 대해 은행들로서는 내심 법적 다툼도 고려해 볼 만한 사안으로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모양새가 됐다"며 "이와 별개로 추후 주주들의 배임 지적이 일 수 있다는 측면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잠재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펀드 판매사가 일체의 투자 손실을 짊어지게 됐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번 판단을 계기로 향후 펀드 사고 발생 시 100% 원금을 반환하라는 요구가 반복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금융권의 펀드 시장 자체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투자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에게 있다는 원칙이 깨지게 된 모양새"라며 "대규모 투자 손실이 생길 때마다 사사건건 갈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 역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평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라임 펀드 사태의 경우 아직 법원에서 판매사의 잘잘못을 제대로 따져봐야 할 소지가 남아 있음에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못 이겨 배상이 이뤄지게 된 현실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은행들로서는 이전보다 펀드 판매에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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