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황유-고유황유간 스프레드 t당 60달러 미만
코로나로 '저유황유 특수' 사라져…하반기도 '시름'
올해 '저유황유 특수'를 기대하고 관련 설비를 일제히 늘린 국내 정유사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1월부터 시작된 환경규제로 수요가 치솟으면서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코로나 악재로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저유황유는 고유황유 보다 황 함유량이 적은 기름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나 수요 부진으로 마진이 크게 줄었다. 시장 선점을 위해 공격적으로 설비 증설에 나섰던 정유사들은 예상 보다 길어지는 코로나 사태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6일선박유 가격 정보 업체 십앤드벙커에 따르면 글로벌 20개 항구의 평균 초저유황중유(VLSFO) 가격은 이달 6일 기준 배럴당 t당 331.5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초 가격인 t당 699달러의 '반토막' 수준이다.
올해 1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치솟던 저유황유 가격은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로 수요가 급락하면서 4월 한 때 21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수요 부진으로 저유황유와 고유황유간 가격차이(스프레드)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올해 초만 해도 t당 300달러 이상 벌어졌던 스프레드는 현재 55달러로 크게 좁혀졌다.
저유황유는 탈황설비로 황 함유량을 낮추는 작업이 필요한 만큼 고유황유 보다 가격이 비싸다. 수요가 급증했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는 100% 가까이 차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코로나 이후 가격차이가 빠르게 좁혀지면서 현재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유황유 호황을 기대하고 시장 선점을 위해 나섰던 정유사들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앞서 정유사들은 IMO 황산화물 규제를 앞두고 수 년 전부터 일제히 설비 증설에 나섰다.
SK에너지는 1조원을 투자해 울산에 하루 4만배럴의 저유황유를 처리할 수 있는 `감압잔사유탈황설비(VRDS)`를 구축, 3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VRDS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고유황 중질유에 수소첨가 탈황반응을 일으켜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유와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설비다. SK에너지는 VRDS 가동으로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추가 영업이익을 창출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충남 서산 대산공장에 하루 최대 6만7000배럴을 처리할 수 있는선박용 저유황유 전용 생산설비를 구축했다. 아울러 저유황유 선박 연료 브랜드인 '현대스타(HYUNDAI STAR)'를 출시하기도 했다.
에쓰오일은 울산 온산공장에 있는 잔사유(남은 기름)에서 황을 제거하는 설비를 현재 증설중이다. 앞서 2018년 11월 하루 평균 6만3000배럴을 처리할 수 있는잔사유 탈황설비(RHDS)를 신설한 바 있다. GS칼텍스는 공장 연료로 쓰던 저유황유를 선박유로 판매중이다.
이처럼 정유사들은 환경규제 호재로 저유황유 수혜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제대로 된 마진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고수익 제품인 저유황유 수요가 높아야하지만 해상 물동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저유황유 소비가 동반 감소했기 때문이다.
앞서 글로벌 선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금융위기 수준의 물동량 감소가 예상되자, 목표를 기존 '점유율 경쟁' 대신 '수익성 개선'으로 변경하고 대대적으로 선복량을 축소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동~서를 오가는 원양항로만 200회 이상 임시결항이 실시됐다.
공급량 축소는 곧 선박유 수요 감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유사들에게 악재다. 하반기 업황은 상반기 보다는 다소 개선됐지만 아직까지 코로나 여파가 지속되고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정유사들은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수요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만큼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되 당분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 업황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반기를 기점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인 운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