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윤여철, 정진행 등 '정몽구 가신그룹' 부회장단 거취 관심
외부영입 인사 중 지영조·알버트 비어만 사장급 파격 인사 가능성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4일 회장으로 선임되며 후속 인사 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2년간 수석부회장으로 그룹 경영을 총괄하며 큰 폭의 인적 쇄신을 진행한 상태지만 이번에 정식 회장의 자리에 오른 만큼 추가적인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정 신임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부회장에서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부회장단을 대폭 물갈이했다. 부친인 정몽구 회장 시절에 그룹 경영을 이끌던 핵심 경영진을 자신과 오랜 기간 함께했거나 자신이 외부로부터 영입한 인물들로 교체한 것이다.
그해 연말 인사에서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려온 김용환 기획조정실·비서실 담당 부회장이 현대제철로 이동한 게 상징적으로 의미가 가장 큰 인사였다. 오랜 기간 정몽구 회장의 비서 역할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김 부회장의 계열사 이동은 '정의선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사로 여겨졌다.
현대·기아차 연구개발 담당 양웅철 부회장과 연구개발본부장 권문식 부회장도 당시 고문으로 위촉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공석이 된 현대차그룹의 R&D 수장은 정의선 회장이 2015년 BMW로부터 영입한 알버트 비어만 사장(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이 맡았다.
정몽구 회장 시절 현대차의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했던 정진행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담당 사장도 그해 부회장으로 승진과 함께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는 정 신임 회장의 핵심 참모로 꼽히는 공영운 사장이 맡았다.
2010년 3월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무려 8년간 ‘장기집권’했던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도 2018년 연말 인사에서 현대로템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 부회장은 이듬해 용퇴를 결정하며 고문으로 물러났다.
사장단에도 변화가 생겼다. 올해 4월에는 박한우 기아차 사장이 고문으로 위촉됐고, 한성권 전 현대차 상용담당 사장과 안건희 전 이노션 사장 역시 지난 7월 인사에서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인규 그룹 인재개발원장(부사장)도 자문역으로 위촉됐다.
지난 2년간의 인사와 이번 정의선 회장의 승진으로 현재 현대차그룹에는 4명의 부회장만 남았다.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과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다.
김용환 부회장은 사실상 경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으로 현대제철의 경영 관련 사안은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포스코에서 영입한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김 부회장은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긴 이후 대외활동이 거의 없이 조용하다.
윤여철 부회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국내생산담당을 내려놓고 노무담당만 전담하게 됐다. 국내생산 담당을 하언태 사장이 맡게 되면서 윤 부회장의 역할은 축소된 상태다.
하지만 노무 분야에서는 대체 불가로 평가받는 만큼 윤 부회장은 현직을 좀 더 유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윤 부회장은 현대차 내에서 오랜 기간 노무 분야를 담당해 왔으며 2008년 현대차 노무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10년 넘게 그룹 내 계열사들의 노무 현안을 총괄해 왔다.
정진행 부회장은 2년 전 현대건설로 이동하며 현대차그룹 내 핵심 경영진에서는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현대제철·현대로템에 김용환·우유철 부회장 외 별도의 최고경영자를 뒀던 것과 달리 현대건설은 정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정 부회장의 역할이 남아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정 부회장은 한국전력 부지 인수 당시 TF(태스크포스) 소속이었던 만큼 정몽구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꼽히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이 어느 정도 진척되기까지는 현대건설을 이끌며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된다.
부회장단 중 정태영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 차녀인 정명이 현대카드 브랜드부문 대표의 남편으로 사실상 오너 일가에 포함된 만큼, 인사 관련 하마평에서는 논외로 여겨진다.
정 신임 회장이 과거 외부에서 영입한 인재들의 역할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정의선의 외인부대’로 불리는 이들은 이미 그룹 내 R&D와 디자인 부문에서 핵심 요직에 포진해 있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2017년 현대차그룹에 영입된 지영조 사장은 현재 현대자그룹 전략기술본부장을 맡으며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국내외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정의선 회장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다.
현대·기아차의 파워트레인 기술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과 정의선 회장이 기아차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디자인 기아’ 신화부터 함께한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최고디자인책임자(사장) 등도 대표적인 ‘정의선 외인부대’로 꼽힌다.
정 회장의 핵심 측근인 공영운 현대차 전력기획담당 사장의 역할도 주목된다. 공 사장은 2005년 현대차그룹으로 영입된 이후 홍보실장을 맡으면서 정의선 회장의 해외 출장길을 여러 차례 수행하며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그동안 해외 경쟁사나 타업종에서 다양한 인재를 영입해 인재 풀을 형성해놓은 만큼 또 다른 인물이 사장급 핵심 요직에 자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은 과거에도 그룹 내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해당 보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내외부 따지지 않고 찾아 앉히는 효율 인사를 선호하는 모습이었다”면서 “앞으로의 인사 방향도 그런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