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뉴딜 5000억 찔끔 깎고
나랏빚은 3조5000억원 늘렸다
재탕 사업, 실효성 논란 들끓어
정부 사업인데 '예타 부재' 지적도
야당에서 절반 이상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한국판 뉴딜 예산이 고작 5000억원 감액된 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됐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긴축 재정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효성 논란'이 가장 많았던 뉴딜 사업을 사실상 관철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의결한 2021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한국판 뉴딜 예산은 당초 정부안(21조3000억원)에서 약 5000억~6000억원 감액됐다.
뉴딜 감축 이외 뚜렷한 대안이 있던 것도 아니었던 만큼 결국 역대 최대 규모 예산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안 대비 3조5000억원 규모로 국채를 추가 발행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의견이 사실상 관철된 셈이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는 956조원으로 늘어났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7.3%로 증가했다.
◇한국판 뉴딜, 곳곳에 침투…국가R&D, 부처별 뉴딜 추진 예산 확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에서 한국판 뉴딜 비중이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27조4018억원으로 올해보다 3조1823억원 증액됐다. 내년도 연구개발 중점투자 분야 중 하나는 한국판 뉴딜로 올해보다 1조1030억원 증가한 1조9366억원을 투입한다.
국가·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디지털 뉴딜에 8824억원(136.0%)이 증가한 총 1조5315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에너지 효율 향상, 미세먼지 저감, 수소 기술개발 등 그린 뉴딜에 올해 대비 282억원(85.9%) 증가한 총 610억원이 반영됐다. 또 강수량 증가 등 변화하는 기후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재난·안전관리 사업 등 디지털 뉴딜 예산이 증액·신설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 각 부처별로도 한국판 뉴딜 투자 예산이 증액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1년도 예산은 총 17조5154억원으로, 올해 예산보다 1조2086억원(7.4%) 증액된 규모이다. 한국판 뉴딜, 3대 신산업 육성, 감염병 대응 등을 위한 예산이 확대된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자체 사업비는 5조3072억원으로 정부 제출안과 비교하면 6228억원이 추가 반영됐다. 이중 1조1900억원은 디지털 뉴딜 예산으로 편성됐다.
국토교통부는 예산 편성을 한국판 뉴딜에 역점을 뒀다. 국토부의 한국판 뉴딜 예산은 올해 1조2865억원에서 내년 2조3685억원으로 대폭 증액됐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목적이다. 그린리모델링 2276억원, 공공임대 그린리모델링 3645억원 등이 확정돼 기후변화에 대비해 국내 친환경 건축산업 육성 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취지다. 이 여파로 국토부 전체 예산은 올해보다 6조9258억원 늘어난 57조575억원으로 확정됐다.
◇실효성 논란 부글부글…"재탕 사업이 부지기수, 예타 꼭 거쳐야"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긴축 재정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효성 논란'이 가장 많았던 뉴딜 사업을 그대로 통과시킨 건 적절한 처사가 아니였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민간 투자 유치를 이끌어낼 수 없고 미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죽은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평가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한국판 뉴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재탕 사업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라며 "뉴딜이 방점을 찍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과학 등은 이전부터 정부가 추진해오던 내용으로 이는 R&D에 불과할 뿐 경제를 살리는 산업 육성이라고 보기엔 어렵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이어 "뉴딜 사업을 한다면서 산업 파급 효과가 큰 대형 SOC 사업은 빠지고 SOC 디지털화, 그린 리모델링 등에 그친 점은 가장 안타까운 점이다"며 "기존 예산을 줄이고, 인텔리전트 빌딩 등 랜드마크 개발을 통한 국제 도시화 또는 디지털·첨단기술과 연계한 대규모 개발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 등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정 지출로 꾸려가는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예산을 통과시킨 것은 정부의 안일한 처사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위직 공무원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새로운 사업을 꾸리기 위해 예산 1조원도 편성하기 힘들다고 들었다"며 "정부가 들어서기 전 검토와 숙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수립된 한국판 뉴딜에 국민 세금 수십 조를 붓는다는 것은 졸속 사업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내년 예산에 반영된 뉴딜 사업에 옛날에 하던 사업을 이름만 바꿔서 재탕한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정부 재정 지출로 꾸려가는 것이라면 예비타당성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