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18.3조 급증 '사상 최대'…저금리 속 고삐 풀린 빚투
BIS 평가 빚 위험 '경보' 격상…정부 규제 헛발질로 위기 증폭
국내 가계부채가 최근 한 달 동안에만 18조원 넘게 폭증하며 사상 최대 증가폭을 경신했다. 이에 국제결제은행(BIS)은 우리나라 민간의 빚 위험도를 10여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로 격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을 계기로 현실화한 제로금리가 가계부채를 떠받드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의 잇따른 규제 부작용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국내 가계가 은행과 제 2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18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월간 가계대출 증가액은 한은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특히 지난 9월 11조원, 10월 13조5000억원에 이어 최근 석 달 동안 가계대출 증가폭은 계속 몸집을 불리는 형국이다.
가계대출은 올해 내내 대형 시중은행들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 곡선을 그리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이 보유한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11월 말 기준 540조581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8.5%(42조2721억원)나 증가한 상태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이들의 가계대출이 467조4411억원에서 498조3096억원으로 6.6%(30조8685억원) 늘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아직 올해가 다 가기도 전에 연간 가계대출량이 10조원 넘게 확대된 셈이다.
이 같은 가계 빚 확장은 이제 글로벌 금융권의 시선으로 봐도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BIS 집계에서 우리나라의 민간 부문 빚 위험도는 11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로 높아졌다. 올해 2분기 기준 한국의 신용갭은 13.8%포인트로 전 분기(9.4%포인트)보다 4.4%포인트 상승했다. 이 수치는 1991년부터 현재까지 명목 국내총생산과 비교해 가계와 기업의 빚이 차지하는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보여주는 부채 리스크 지표다. 신용갭이 10%포인트를 넘어서면 위험도가 경보 단계로 분류된다.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멈출 줄 모르고 고공행진을 벌이는 배경으로는 우선 기준금리의 추락이 꼽힌다. 이로 인해 대출 이자가 저렴해지자 좀 더 쉽게 대출에 손을 대고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지난 3월 코로나19 여파가 확대되자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0%대까지 떨어진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어 한은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0.50%로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여기에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와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산다는 영끌 바람이 더해지면서 가계부채는 말 그대로 고삐가 풀린 모양새가 됐다. 저금리에 힘입어 시장에서 대량으로 풀린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의 가격 상승을 이끌자, 추가적으로 빚을 내 투자에 나서는 수요가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어서다.
문제는 계속되는 정부 정책의 역효과가 가계부채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잡겠다며 연일 내놓고 있는 대출 규제가 오히려 차주들의 불안 심리를 조장하면서, 의도와 달리 대출 러시를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낳는 모양새다.
얼마 전 금융권에 파장을 일으켰던 신용대출 규제 논란은 이런 정책적 미스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금융당국은 지난 달 고소득자가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은 뒤 1년 안에 부동산 규제 지역에 있는 주택을 구입할 경우 대출을 제한하겠다는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공개했다. 그런데 발표 시점으로부터 2주 뒤에 규제를 실행하겠다는 방침 탓에 이른바 묻지 마 신용대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같은 달 금융권의 신용대출 증가액은 7조6000억원으로, 전달(4조원)보다 두 배 가까이 급증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 달 가계대출의 경우 전세자금대출 증가폭이 축소됐음에도 주택 매매 관련 자금 수요가 이어졌고, 주택·주식 및 생활자금 관련 수요가 지속되면서 기타대출도 크게 늘었다"며 "신용대출 규제 시행 전 자금 확보 움직임 등이 가세하면서 대출 증가세가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이처럼 과도하게 쌓인 가계 빚에 잠재된 위험이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염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출 리스크를 억누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일시에 리스크가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금융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은행들에게 적극적인 만기 대출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주문했다. 코로나19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만기 대출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는 내년 상반기 중 끝날 예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 정책이 종료되면 숨어 있던 대출 연체가 드러나면서 여신 건전성의 민낯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더불어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지금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반전되며 미국을 중심으로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질 경우 가계부채를 둘러싼 압박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