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손보사 순익 1.9조…코로나 딛고 3000억 가까이 늘어
기업 가치 회복 타이밍인데…금감원, 배당 기대감에 '찬물'
국내 5대 손해보험사들의 순이익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올해 들어 3000억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손해보험업계가 호실적을 바탕으로 배당을 늘려 눈에 띄게 추락한 기업 가치에 대한 회복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와중 금융당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배당 자제령을 내리면서 손보사들로서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모양새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과도한 정책적 개입이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5개 손보사들이 거둔 당기순이익은 총 1조8958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5974억원) 대비 18.7%(2984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손보사별로 봐도 거의 모든 곳들의 실적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먼저 삼성화재의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5859억원에서 6289억원으로 7.3%(430억원) 증가하며 최대를 유지했다. 이어 DB손해보험 역시 3287억원에서 4420억원으로, 메리츠화재는 2127억원에서 3236억원으로 각각 34.5%(1133억원)와 52.1%(1109억원)씩 순이익이 늘었다. 또 현대해상의 순이익도 2362억원에서 3147억원으로 33.2%(785억원) 증가했다. 조사 대상 손보사들 중에서는 KB손보의 순이익만 2339억원에서 1866억원으로 20.2%(473억원) 감소했다.
이처럼 손보업계의 수익성이 좋아진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반사이익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차량 이동이 줄면서 자동차보험에서의 손해를 축소할 수 있었고, 아울러 감염 우려에 고객들이 병원 방문을 자제한 측면도 보험금 지급을 억제시키는 요인이 됐다. 이 덕에 하절기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와 코로나19에 따른 영업 부진을 상쇄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이렇게 손보사들이 코로나19 충격을 딛고 실적 개선에 성공하면서 이들의 연말 배당 규모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순이익이 상당 폭 늘어난 곳들이 많은 만큼, 주주들에 대한 배당 파이도 몸집을 불릴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다. 실제로 최대 사업자인 삼성화재가 지난해부터 내년에 걸쳐 3년 간 배당 성향을 50%까지 키우겠다는 방침을 유지하면서, 손보업계의 배당 확대 움직임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배당 성향은 기업이 거둔 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총액의 비율을 일컫는 표현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손보사들의 기업 가치가 급락한 현실도 배당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이후 손보사들의 주가는 맥을 추지 못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손보업계에 악재가 아닌 호재로 작용한 만큼, 배당을 늘려 주가 회복에 시동을 걸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5대 손보사들 중 비상장사인 KB손보를 제외한 나머지 4개사의 시가 총액 합계는 지난 달 말 종가 기준 15조7583억원으로 지난해 말(19조8011억원)보다 20.4%(4조428억원)나 감소한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시점에서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배당에 태클을 걸고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 달 말 금융감독원은 손보사 최고재무책임자들을 불러 배당 자제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면담의 명목은 코로나19 이후 주요 현안과 의견 청취였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배당 수위에 맞춰졌다는 얘기다.
금감원이 손보사 배당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까닭은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더욱이 2023년 새 국제회계 기준 도입을 앞두고 자본 확충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지나친 배당을 억제해 선제적인 대비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의 이런 압박은 배당을 확대를 통한 주주 친화 정책을 꾀하던 손보사들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인위적인 간섭으로 특정 업종의 기업 가치 회복을 막고 있는 셈이란 볼멘소리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배당 자제 권고는 말 그대로 법적 효력이 없는 권고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금융당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사는 눈치를 안 볼 수 없다"며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을 정도로 정부의 개입이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