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업 복원 통한 실질임금 상승, '무쟁의 타결' 현대차보다 유리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 허용 등으로 노사 힘의 균형 맞춰야"
기아자동차가 ‘2020년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연내 타결하는 데 성공했다. 새해에는 생산차질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9년 연속 파업을 반복하며 ‘파업하면 더 준다’는 전례를 남겼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9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에 따르면 이날 경기 소하·화성공장, 광주공장, 판매·정비서비스 등 각 지회별 조합원 총 2만92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서 임금혐상(임협)과 단체협약(단협) 모두 가결로 마무리됐다.
전체의 92.4%인 2만7050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임협은 58.6%(1만5856명), 단협은 55.8%(1만5092명)가 찬성했다.
이로써 기아차 노사는 해를 넘기지 않고 임단협을 타결하게 됐지만 2011년 이후 9년 연속 파업이라는 불명예를 이어가게 됐다.
노사는 지난 8월 27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무려 16차례의 교섭을 진행했다. 같은 현대차그룹에 속한 현대차 노조가 추석 연휴 이전인 9월 25일 임단협을 가결시킨 이후에도 기아차 노조는 3개월을 더 끌었다.
그 사이 기아차 노조는 4주간 부분파업을 벌였으며, 이를 통해 사측에 4만7000대 가량의 생산차질을 안겼다.
노조 파업으로 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도 고통을 겪었고, 소비자들도 카니발, 쏘렌토, K5 등 인기 차종들의 인도가 늦어지는 등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최종 타결된 결과물은 무쟁의로 타결한 현대차보다 노조 측에 다소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본급 동결(호봉승급분 인상), 경영성과금 150%, 격려금 120만원, 재래시장상품권 20만원 지급 등은 두 회사가 동일한 조건이다. 여기에 현대차는 우리사주 10주이 추가되고, 기아차는 상품권 130만원이 추가됐다. 현대차 임단협 타결 당시인 9월 주가를 기준으로 하면 현대차 노조는 185만원 상당의 주식을 받은 셈이니 기아차가 상대적으로 일시금이 적다.
하지만 잔업 복원을 통한 실질임금 인상을 감안하면 기아차 근로자들의 혜택이 더 크다.
기아차 노조는 이번 임단협을 통해 하루 10분의 잔업을 실시하고도 25분에 해당하는 임금을 보전 받기로 했다. 대신 전 라인의 시간당 생산량(UPH)을 0.3대 늘려 하루 6분에 해당하는 작업량을 충당하고, 일부 비가동일(자체휴무, 노조일정 등)을 줄여 하루 평균 9분의 작업량을 만회하기로 했다.
25분에 해당하는 잔업 보전금액은 월 11만3712원이다. 그만큼의 실질임금 상승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대차 역시 지난해 비슷한 내용의 잔업 방식에 합의해 시행하고 있으나 잔업 보전금액은 9만8213원으로 기아차보다 적다.
1회성 수령액인 일시금은 현대차보다 적지만, 매년 지속적으로 수령하게 되는 잔업 보전금액은 기아차가 높으니 결과적으로 파업으로 사측을 압박한 쪽이 더 큰 혜택을 받게 된 셈이다.
이는 내년 현대차의 임단협 교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현대차 노조가 기아차 노조의 선례를 들어 파업으로 사측을 압박하고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내면 그 역풍은 기아차에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물론 기아차 노조원들도 파업에 따른 임금 손실이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손실이 아니라 ‘일을 안 하고 돈을 안 받은’것에 해당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노조 파업으로 생산차질을 견디다 못한 사측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파업 악습을 끊기 힘들 것”이라며 “후진적 노사관계를 개선하려면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 허용 등 사측의 대항권을 보장해 노사간 힘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