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서 '총비서'로
정치국 후보위원서 빠진 김여정
별도 신규 조직 맡았을 가능성
대남·대미 라인 소폭 조정
북한이 노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비서 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총비서'로 추대됐다.
위상 강화가 점쳐졌던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기존 직위에서도 물러나 입지가 좁아졌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신규 조직을 이끌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라는 지적이다.
11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매체들은 전날 개최된 제8차 노동당대회 6일차 회의 내용을 전하며 "김정은 동지를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높이 추대할 것을 결정한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9일 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해 기존 '위원장(정무국) 체제'를 '비서국 체제'로 5년 만에 환원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국무위원장'직과 겸하고 있는 '노동당 위원장'직은 '노동당 총비서'직으로 바뀔 전망이다.
다만 북한이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총비서'로 못 박은 바 있어 이번 직함 개편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12년 4월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결정서를 채택한 바 있다.
정성장 미 윌슨센터 연구위원 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기존 결정서를 부정하고 김정은을 총비서직에 추대했다"며 "기존 정무국 체제에서 당 조직 각급 별로 너무 많은 '위원장' '부위원장' 직책이 존재해 김정은 권위가 충분히 서지 않는다고 본 것 같다. 총비서 체제는 김정은 유일 독재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기존 '위원장' 직함을 지방 당대표들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총비서'인 김 위원장을 정점으로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 순으로 직제를 명확히 구분해 김 위원장 위상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는 뜻이다.
앞서 북한 매체들은 "각급 당 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직제를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로 하고 정무국을 비서국으로 고쳤다"고 전한 바 있다.
개회식서 주석단 둘째줄 앉은 김여정
"성급한 판단은 유보해야"
요직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던 김여정 부부장은 기존 직책이었던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 당 부장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앞서 김 부부장은 당대회 개회식에서 주석단 둘째 줄에 배치돼 정치국 위원이나 특정 부서 책임자로 승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고위급 인사 명단에서 제외된 상황이지만, 최근 강경화 외교부 장관 비난 담화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했던 만큼 김 부부장이 대외분야에서 별도 조직을 이끌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여정의 위상과 공식 지위와 관련해서는 성급한 판단은 유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여전히 당 중앙위 위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핵심 직책을 맡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단상에 올라가는 집행부 39명 중 20번째로 이름이 불렸다"며 "'중대한 실수'로 강등된 것인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측근' 조용원 '약진'
'핵심 지도부' 정치국 상무위원 임명
그 밖의 주요 인선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조용원 당 제1부부장의 '약진'이다. 조용원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인물이다.
북한 최고지도부로 꼽히는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된 조용원 부부장은 △당 중앙위원회 비서직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도 겸하게 됐다. 이로써 상무위원회는 김정은 위원장과 기존 최룡해·리병철·김덕훈 5인으로 구성되게 됐다.
김여정 부부장이 꿰찰 수 있다고 전망됐던 당 조직지도부장 자리에는 김재룡 전 내각총리가 임명됐다. 조직지도부는 당 주요 인선을 담당하고 고위간부들에 대한 검열권을 가진 핵심 부서로 평가된다.
앞서 김재룡 부장은 지난해 연말 김 위원장이 주재해오던 정치국 회의 사회를 맡은 바 있으며, 당대회 참가 대표자들에게 대표증을 수여 하기도 해 '중책'을 맡았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냉면 목구멍' 리선권, 자리 지켜
통전부장에는 '강경파' 김영철
한편 북한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대미·대남 라인도 소폭 조정했다.
대미 라인으로 꼽히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됐다. 리선권 외무상은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를 지켰다. 리 외무상은 지난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측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느냐"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남 라인에선 장금철 당 통일전선부장(한국의 통일부)이 부장단 명단에 빠졌다. 대신 대남 문제를 총괄해온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당 비서에서 제외되고 당 부장에만 이름을 올려 통전부장직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남 파트에서 비서직이 사라지고 당 부장직만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북한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대남 및 외교 담당 인원을 줄여 기존 10명으로 꾸려졌던 당 부위원장 체제를 당 비서 7인 체제로 개편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