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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열흘 훌쩍, 은행서 IRP계좌 개설하려니...“비대면으로”


입력 2021.04.06 11:06 수정 2021.04.07 08:29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고난도 상품 회피·비대면 가입 권유...고령층 배려↓

금융당국과 쌍방향 소통, 세부 개선책 조속히 나와야

6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의 지점 창구 ⓒ데일리안 이호연 기자

“고객님 안정추구형으로 가입했다가, 비대면으로 위험중립 변경 어떨까요?”


지난 5일 기자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중인 은행에서 개인형퇴직연금(IRP)를 가입하려 하자, 영업 소요시간을 우려한 은행직원이 조심스럽게 방법을 제시했다.


6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지 열흘이 훌쩍 지났으나, 일선 현장에서는 아직도 금소법 적응에 애를 먹는 분위기다. 금융권은 영업시간이 3배 가까이 늘어나 고객들이 불만을 토로했던 첫날보다는 나아졌다면서도, 분량이 방대하고 규제 내용도 까다로워 쉽게 안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자는 전날 오후 3시께 IRP 계좌를 신규 개설하기 위해 송파구의 한 은행을 방문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동네 영업점임에도 손님들은 10여명으로 가득 찼다. 20여분의 대기 시간이 지난 후 IRP에 가입하고 싶다고 하자 은행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순조롭게 이어지는 듯 했으나 IRP 운용 상품 구성에서 1차 난관에 부딪혔다.


기자가 채권, 펀드, 주식 등이 섞인 ‘위험중립형’을 선택하자 은행원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객님 펀드 상품 선택시 설명이 길어져서 다른 고객분들의 대기 시간도 늘어나서요”라며 “괜찮다면 예·적금만 있는 안정추구형으로 가입하시고, 모바일 앱으로 위험중립형 변경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라고 추천을 했다.


기자는 안정추구형으로 가입키로 하고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모바일로 발급받기로 했다. 그러나 확인서 팩스 전송이 늦어지며 두번째 장애물에 봉착했다. 10분이 지나도 팩스가 전송되지 않자 대기 고객들의 눈총(?), 이후의 예상 소요시간 등을 감안해 다음날을 기약키로 했다. 문제의 팩스는 두시간 후 은행으로 도착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소비자에게 쉽게 설명하면서도 효율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금소법 개선 의지를 다졌지만, 현장과의 체감온도는 너무 다르다. 일선 영업점에서는 여전히 녹취전쟁이 한창이고, 고육지책으로 고난도 투자상품은 비대면을 권유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고령층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실제 기자가 IRP 계좌 개설을 상담받는 와중에도, 옆자리 어르신이 상품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청원경찰까지 와서 직원을 거들기도 했다. 설명을 듣고 동의란에 체크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 눈이 어두워 체크 항목을 찾지 못하신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영업시간이 기존보다 1.5배 정도 걸리긴 하지만, 시행 초기보다는 많이 안정된 상황”이라면서 “비대면 통합관리 시스템 등 자체 전산 개발 구축으로 고객들의 편의성을 더욱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금소법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키로 한 가운데 아직 구체적인 지시사항 등은 전달된 것이 없다”며 “영업점에서는 예적금 30~40분, 펀드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다만 금소법 홍보는 상대적으로 잘 되고 있어서, 법 시행을 감안하고 대기시간에 여유를 두고 오는 고객들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금소법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당국이 블랙컨슈머 등 우려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업계와 쌍방향 소통을 자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애로사항을 청취중이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달받는 수준”이라며 “실무진들과 의견을 직접 주고받는 설명회를 진행하거나, 서면으로 수시로 건의사항을 받는 방법 등도 고려할만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중은행들은 금소법 준수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대면 금융상품을 중단한 상태다. 키오스크·무인단말기를 통한 비대면 상품 판매와 인공지능(AI) 서비스는 현재 사용할 수 없다. KB국민은행의 스마트 텔러머신 서비스, 하나은행의 AI 로보어드바이즈 서비스 ‘하이로보’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금소법 위반 1호가 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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